내가 대명8동에 살게된 때가 6살 무렵 인가 보다

어릴적 4살 때 쯤인가 대구 남구 영선 시장 부근 영선못부근에서 살다

영선못이 메꿔 지고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능인중고등학교 뒷 담벼락 따라

주택이 있던곳 (지금의 이천동)에서 좁디 좁은 소방 도로 하나 건너

대명 8동 대문을 나서면 마주 보는 곳은 이천동이다

명덕로타리에서 부터 능인중학교 까지

남산동에서 큰길 하나 지나면 대명8동 이천동 그곳에서 영선시장까지

내가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곳이다.

"수년전 초등학교 동기 녀석이 우리 바로 뒤에 살았다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린 길위에서 내가 살던곳이 여기인데

집이 다 뜯겨 없어졌구나 하고 탄식하던 일이 얹그제 같은데"

곧 이 마을이 사라진다 재 개발이란 명목 아래 그다지 큰 단지는 아니지만

아파트가 들어 서기로 예정되어 이제 지주들의 땅을 모두 매입하여

조감도가 세워지고 모델 하우스가 생겨나고 새로 지을 아파트의 분양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 의 분양률은 재개발을 추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빌자면 50% 남짓

60%만 분양이 되면 일반 분양으로 돌리고 착공에 들어 간다고 한다.

이곳은 명덕역과 5분도 채 안되는 거리 그리고 3호선 건들바위 역과도

10분 이내면 갈수 있는거리 반월당 역도 걸어서 20분 그야말로 역세권중 역세권이다

대구 시내와도 그리 멀지 않아 소싯적 대구시청에 근무할때

시청까지 걸어서 출근 하곤 하던 곳이 조금 있으면 뜯겨 없어진단다.

뜯기기전 사진을 남겨 놓아야 어릴적 뛰어 놀던 골목길을 기억 할수 있을듯 하여

카메라를 메고 간 김에 어릴적 뛰어 다니던 골목길을 사진으로 남겨 본다.


초등학교 동기인 친구 홍식이가 탄식하던 그곳 좁은 골목길은 없어지고 그리고 주변의 가옥도 모두 없어지고 소방 도로가 생겼다.

약간 비탈이진 마주 보이는 저 동네를 우린 웃동네 라고 불렀다

구세군 교회로 통하는 길이다 이곳 역시 좁은 골목길이 소방도로로 변모하여 주변 주택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곳에 살던 이상화 그리고 몇몇 친구들 다 어디서 무얼 할까?

이상화라는 친구는 초등학교 동기이며 중학교 동기 이기도 하다

왼쪽 전봇대가 있던 저곳이 백씨네 쌀가게가 있던곳인데 그리고 맞은편이 아마 이발소 였지

오른쪽 전봇대가 있는 이곳 지금은 주유차량이 서있던데 보자 이곳이 백씨네 쌀가게 였지

이 골목을 올라가면 구세군이 있었다 구세군 고아원과 머지않은 곳에 구새군 교회 크리스마스이브 때면 이곳에 가서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고 하였지만

예수사랑 할라고 예배당에 갔더니 내신 훔쳐 갈라고 눈감아라 하더라 예수사랑 할라고 예배당에 갔더니 가진것도 없는데 돈 내나라 하더라 이런 놀랠 부르곤 했다.

그러면서도 부활절이면 계란을 받으러 가고 추수 감사절엔 과자를 받으러 가던 곳이다

골목길 똑바로 보이는 곳이 성주 상회 저곳은 어린시절 김일선수의 프로 레슬링을 할때면 항상 바글바글 아이들이 들끓고 텔레비젼 앞에서

김일의 박치기 한방에 일본 레슬러들이 뒤로 나자빠 지는것을 보며 좋아라하고 통쾌하게 웃던곳이다

옛 성주 슈퍼에는 이정원 이정식,구야가 살고 있었는데 장사가 제법 되었던거 같다.

정원이야 한 동기지만 건달의 세계로 빠져든 듯 동생 정식이도 건달이 되었고 정원이 형인 구야는 일찍 생을 마감 했다.

정원이와는 그나마 연락이 간간히 되지만,  송구 선수였던 정원이는 요샛말로 학교에서 짱이였는데 그런 기억들이 아련하다

파라솔이 있는곳이 성주상회이다 요샛말로 성주 슈퍼 하지만 슈퍼라고 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은 골목 구멍가게 이다

어른들이 막걸리 한되 받아오너라 하면 주전자 들고 가서 막걸리를 받아 오며 막걸리 꼭지를 기울여 한모금씩 하던 기억 들이 아직도 선 한데..

이곳이 우리집이다 예전 단층 양철지붕이던 가옥을 다 없애고 새로 지었다 하긴 새로 지었다는게 벌써 30년이 다 된듯 하다.

우리 앞집 경희네 집은 다 뜯겨 없어지고 골목안 쪽에 있는집 예전에 이곳에 요꼬 라는 편물 공장이 있었다.

요꼬 공장에 기술자 청춘 남녀가 사랑을 하다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고 비관하다

그 시절 구멍가게를 하던 우리 가게에 와서 막걸리를 마시며 세상은 원망하더니

결국엔 두 청춘 남녀가 동촌에서 자살을 하였다는 그런 슬픈 이야기가 있던 곳이다.

그 기술자 남자 그리고 여자 우리가게에서 술 마시던 기억이 난다.

우리집 아래로 명덕로로 나가는 길이다 정동기 정동구 그리고 표기석이란 친구들이 살던 곳인데 다들 어디서 어찌 사는건지?

우리집 옆 골목 우리땅이 많이 물린곳인데 집을 지을때 조금이라도 더 내터를 지키고 싶어했던 아버지와

골목길을 사람이 다닐만큼은 확보 되어야 한다고 동네 어른 분과 다투던 때가  기억 난다

예전에 조그만 골목길이 소방 도로로 바뀌였고 이길은 명덕로로 통하는 길이다 청수장 여관과 수도멘션이 보인다

정원이 사촌이 살던 골목 길 지금은 다 쓰러 질 듯한 부산여관이란 곳이 있지만 어디 이곳이 장사가 되려나...

명덕로다 명덕로타리로 향하던 지금은 로타리도 명덕 228기념탑도 모두 없어 졌지만 명덕역이 있다

228기념탑에서 탑동네 녀석들과 한판 붙었던 기억이 나는구먼 짱돌 들고 위협하던 녀석에게 대들어 찍혀

머릿통에 빵꾸가 나 피를 철철 흘리긴 했지만 그녀석을 된통 패줬던 기억이 난다

건들바위 방향 명덕로 이길을 따라 수성천변 동싱초교 까지 걸어거 개울물에 물놀이를 하였었지

이길을 따라 가다 보면 건들바위 사거리가 나오고 고미술 거리가 나오기도 하지

어릴적 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고물들을 모아놓고 팔던 곳이 이제는 고미술품 거리가 되었지

그리고 코흘리게 시절 8군 후문 앞에 가면 후문을 지키던 미군 초병을 만날수 있었고 그곳에 서서 미군들을 향해

기브미 초콜렛, 기브미 껌을 외치곤 했었는데 운수 좋은 날이면 초병에게 과자를 한개 얻어 먹기도 했었지

8군 후문 뒤에는 선술집과 BAR가 많았고 그곳에 종사하는 여자 들을 우리들은 양깔보라고 놀리기도 했었지

재개발 분양 사무소가 위치한 청수장 골목 소방 도로

청수장 여관 그리고 맞은편 남산동 쪽에 수도멘션이 위치한다

명덕로에서 우리집 들어가는 길이다 대흥슈퍼 가 보인다 정말 오래된 가게다

상아멘션으로 연결된 이길은 초파일 능인중학교에서 시작되는 초파일 연등행사 때면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연등 행사를 구경하고

또 연등 행사에 참여한 또래의 이성이나 구경나온 또래의 이성을 꼬시러 눈을 번득이며 돌아 다니든 곳이지

지금은 재개발을 위해 토지 매입을 하기위한 사무실이 개설 되어 있지만 이곳은 고등학교 동기인 김대식이 살았던 곳

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동창회에 가며는 그래도 많은 친구들을 만날수 있건만 이곳에 살던 김대식이는 소식 조차 들을수가 없다.

상아멘션 정문과 연결된 골목길이다 어릴때 골목어귀 동네 친구들과 의병 놀이 하며 온 골목을 휘젖고 다니곤 했었는데

부산여관 이 있는 골목이다 이곳 역시도 좁은 골목길 동네 꼬마 친구들과 의병놀이 한답시고 쫒아다니 든곳이다

참 아련하다 골목 골목마다 좁디 좁은 길임에도 이곳을 돌아 다니며 구슬치기 딱지 치기 의병놀이 자치기 가생놀이 땅따먹기 비석치기 그렇게 많은 놀이를 하곤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곳에 집을 짓고 산지가 벌써 50년이 넘었다   

이제는 그런 기억들이 서린 이곳이 없어진다 그리고 새로이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외지인이 들어와 살게 되겠지

머릿속 어린 기억들이 모두 사라지고 마을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소중했던 어린 추억들도 잊혀지겠지

그래서 그런 기억이 나마 남겨 두고 싶은 까닭에 사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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