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우려낸 물을 나눠 마시자

 
 

침모분작(沈毛分酌) : 음모 우려낸 물을 나누어

마시자

옛날에, 호남의 한 절에서 큰 수륙재(水陸齋)가

열려 인근 고을의 남녀 수천명이 골짜기를 가득

메운 채 성황을 이루었다.

※수륙재(水陸齋) : 육지와 수중 잡귀들을 위해

경을 읽어주는 큰 행사.

행사가 끝난 후에 절의 안팎을 청소하고 있는데

한 동자승이 도장을 쓸고 닦다가 여자 시주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기다란 음모 하나를 발견했다.

이에 동자승이 크게 소리쳤다.

"내 오늘 운이 좋아서 기이한 보배를 얻었도다."

그러면서 껑충껑충 뛰면서 좋아하는 것이었다.

여러 스님들이 뭔가 하고 몰려들어 음모를 보고

서로 뺏으려고, 동자승의 손을 붙잡고 승강이를

벌이자 절 안에는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이에 동자승은 음모가 든 손을 단단히 움켜쥐고

크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내 눈동자가 빠지고 팔이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이것만은 결코 뺏기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내가

얻은 것입니다."

하면서 동자승이 악을 쓰자 여러 스님들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와 같은 귀한 보배를 너 혼자 차지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니라.

그러니 이렇게 사사로이 싸울 게 아니라 절안의

공중(公衆) 의견을 들어 결정함이 옳도다."

그리하여 마침내 종을 울려서 절안에 있는 모든

스님들을 모이라고 하였다.

이에 스님들이 가사를 걸치고, 법당에 모여들어

자리를 잡고 앉았으며 이윽고 나이 많은 스님이

동자승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비록 그 물건을 네가 습득했다고 하나, 엄연히

도장 안에 떨어져 있던 것이니, 우리 절 전체의

것이니라.

그러니 결코 내가 습득했다고 하여 네 것이라고

주장할 수가 없는 일이로다."

이말에 따라 동자승은 앞으로 나와서 그 음모를

여러 사람 앞에 내놓는 것이었다.

그러자 스님들은 음모를 유리그릇에 담아 불상

앞에 정중히 올려놓았으며 이어서 주지 스님이

선언했다.

"이 물건을 우리 절의 삼보(三寶)로 보관하여

영원히 후세로 전해지도록 할 것이니, 아무도

접근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러자 여러 스님들이 반론을 제기했다.

"이것은 수륙재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니 우리

모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보관해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하므로, 이는 마땅히 잘게 나누어서 모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불과 몇치밖에

안 되는 털을 어떻게 나누어, 우리 1천여 명의

승려들에게 돌아가게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의견이 서로 분분할 때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객승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조용히 하시고 외인(外人)으로 참가한

소승의 의견을 들어 보십시오.

소승의 소견으로는 음모를 큰 가마솥에 넣어서

떠오르지 못하게 돌멩이로 눌러두고,

물을 가득 부어, 우려 낸 물을 한 그릇씩 골고루

나누어 마시면 공평하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 되면 소승 또한 그 물 한 그릇 얻어마시는

혜택을 누릴 수가 있을 듯 하나이다."

이에 모든 스님들은 매우 좋은 의견이라 하면서

크게 찬성했다.

이때 절에는 백세된 노스님 한분이 있어 기침과

천식이 심해서 항상 문을 닫고 누워있었는데,

음모를 우려내어 물을 나누어 마시자는 객승의

의견을 듣고 기뻐하며 방문을 열고서 객승에게

합장 배례를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서 오신 객승인지 몰라도 그 논사(論事)가

어찌 그리도 분명하신지요?

앞서 음모를 잘게 나눈다고 하였을 때에 나같은

늙은이는 혜택을 입지 못할것 같아 걱정했는데,

지금 객승의 의견에 따라서 이 병자도 그 물 한

그릇을 얻어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

내가 그 물을 한번 마시고 나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을 듯합니다. 바라옵건대, 객승은 부디

성불하시고 또 성불하소서!"

이 이야기에 야사씨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불가(佛家)에 따르면 '육진(六塵) 가운데 색진

(色塵 : 여색)에 물들기가 가장 쉽다'고 한다.

여인의 음모 하나를 우려낸 물도 이렇게 모두가

기뻐하거늘, 만약 경국지색 미인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어찌하겠느냐?

이런고로 성인(聖人)들은 항상 여색을 멀리하는

것을 교훈으로 삼았느니라.

- 옮겨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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