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숭어 / 심인숙

한밤, 봉숭아꽃 가득한 마당에서 숭어들이 튄다

다닥다닥 붙어사는 셋방 여인들이 마당 수돗가에서
목욕을 한다 청상과부 선아엄마, 집 나간 서방을
기다리는 애경엄마, 그냥 이모라 불리던 사투리 걸죽한 부안댁이다. 아침이면 식당이나 병원, 공사판으로 마른 꽃씨처럼 흩어졌다가 밤이 되면 물오른 입을 들고
돌아오던 여인들. 한바탕 얘기꽃을 피우며 한 겹씩
옷을 벗고 있다

빨랫줄에 걸린 이불 호청 사이로 달빛이 든다. 보초
세운 어둠이 슬쩍 돌아서 있다. 좁은 수돗가에서 미끈한
숭어들이 비늘을 떼고 있다. 찬물을 끼얹을 때마다
저절로 한숨 같은 비음이 흘러나온다. 지느러미처럼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깔깔, 허공을 질러 담을
넘어간다. 숭어들이 별빛을 따라 밤하늘을 헤엄치고 있다.

몰래 숨어든 달의 이마가 붉게 물들었다

* 2006년 전북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ㅇ 2000년 전에만 해도 경제개발 속도가 빨라
남녀노소 누구나 일자리가 있었지요
샤워 시설이 마땅찮은 셋방 여인들
그래도 씻어야 하루의 피곤을 누이고
낼 또 일하러 나가야지요
시인은 마당 수돗가에서 목욕을 하는
셋방 사는 세 여인네를 숭어로 보았네요
숭어들이 때를 씻는 걸 비늘을 벗긴다 하네요
짐작해보자면, 상체는 벗고 치마는 걸치고
서로 등목해주면서 잡다구레한 하루의 얘기들
여인네들만의 수다는 남자와는 많이 다르죠
지금도 농촌에 가면 하루 농사일을 마친
노부부들 또는 이웃 사촌들끼리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곤 할 겁니다
샤워 시설이 없다면 말이죠
어둠을 보초 세워놓고 미끈한 숭어들이 목욕을 하니
달빛이 수줍어 이마가 붉게 물들었네요
개발도상기의 도시나 농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생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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