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지막 풍경
70대 후반의 지인이 지난해 늦여름 넘어져서 다리뼈가 부러졌다.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그곳에선 장기간 입원을 할 수 없어 서울 강남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다 두계절을 보내고 며칠 전 퇴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입원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병문안도 제한돼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거나 가끔 먹거리를 보내드릴 뿐이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지인은 병상에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지인에 따르면 70∼90대의 노인들이 모인 요양병원에서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 박사건 무학이건, 전문직이건 무직이건, 재산이 많건 적건 상관이 없단다. 누구나 똑같이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 있는 그곳에서는 안부전화가 자주 걸려오고 간식이나 필요한 용품들을 많이 받는 이가 ‘상류층’이란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받은 간식과 생필품을 의료진이나 같은 병실 환자들에게 나눠주는 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병실 계급은 그렇게 좌우된단다.
“내 옆자리의 할머니는 밖에서 교장 선생이었고 아들도 고위 공무원이라는데, 사과 몇알은커녕 전화도 거의 안 오더라. 그래서인지 내가 받은 과일이나 간식을 나눠주면 너무 감사하다면서도 민망한 표정을 지었어. 내가 그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야단이라도 치고 싶었다니까. 몇달 아파서 요양병원에서 지내보니 왕년의 직함이나 과거사는 다 부질없더라고.”
지인의 말을 듣고 나도 깨달은 바가 컸다. 과거에 연연하거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에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오늘에 충실하면 된다. 그런데 그 ‘오늘’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친구나 친척들에게 안부전화나 문자를 보내는 일,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이 말년을 풍성하고 풍요롭게 보내는 보험이다. 그 보험은 전략이나 잔머리로 채워지지 않는다. 진심과 성의라는 보험료를 차곡차곡 모아야만 행복한 말년이라는 보험금이 내게 돌아온다. 반대로 자녀에게 공부나 성공만을 강요한 부모,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눈곱만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늘 따지기만 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고독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게 된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모두가 100세까지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삶을 마감할 가능성은 오히려 매우 낮다. 대부분은 병상에서, 혹은 양로원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심지어 홀몸으로 쓸쓸히 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노후에 내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눠줄 이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노후의 행복이다. 결국 노후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관계’다.
최근 후배에게 점심을 사줬더니 후배가 “왜 항상 돈을 선배가 내느냐”고 물어왔다. 거기에 “저금해두는 거야”라고 답했다. 내가 나중에 아팠을 때 후배가 병실에 찾아오지 않더라도, 가끔은 안부전화를 걸어주거나 혹은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반갑게 받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한 투자다.
코로나19 때문에 얼굴을 통 못 보는 친구들에게도 귀여운 이모티콘을 담아 축복의 문자를 보내본다. 나중에 돌아오지 않아도 내가 지금 기쁘면 그만이다. 물론 여기저기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투자하면 내게 되돌아올 가능성도 커질 테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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