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후 열대 과일 먹고 저녁식사후 열대 과일 먹고 매 식사때 마다 챙겨주는 열대 과일들 먹어도 먹어도 다 먹지 못하고 남겨 두고 와야 했다는 열대 과일들




▲ 코코넛 열매를 잘라보면 속이 이렇게 생겼네요 하얀 속살을 씹으면 고소하고 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오징어 회를 먹는 맛과 느낌이 난다는 ㅋㅋㅋ~












2일차 아침 조식후 라구나시로 이동 세계 7대 절경중 하나 라는 팍상한 폭포 급류타기


























8월20일 9시30분 필리핀 항공 탑승 8월21일 오전 1시경 마닐라 도착

- 익스트리멜리스 윗디럭스(EXTREMELI SUITES) 숙소 1732호실 트윈룸 배정 1박

일요일 아침 마닐라 자전거 번개시장 투어



▲ 익스트리멜리스 윗디럭스(EXTREMELI SUITES) 숙소 1732호실 트윈룸 에서 본 숙소 주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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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번개시장(요즘 휴대 전화 몬스터게임에 몬스터가 많이 잡힌다는 곳) 일요일 자전거 라이딩 족이 몰려 나와 자전거 부품과 라이딩 장비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 자전거 부품이 없는게 없는 다양한 상품들 자전거도 제법 가격이 하는것들이 많다

▲ 라이딩을 즐기려는 매니아들이 많은가 보다


▲ 바다와 연결된 하천 하천에 버려진 쓰레기가 장난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오후가 되면 이많은 쓰레기가 흔적을 감추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또 이런 쓰레기가...

▲ 이 많은 쓰레기가 하천을 뒤덮고 있다 오후면 흔적을 감추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또 이런 쓰레기가 쌓인다 그래도 물고기는 노닌다는 ...(숙소에서 바라본 하천)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모든 세상사 이치는 같다 비탈진 산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 길이 있으며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은 반드시 뒤 따른다


그 동안 몇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위기를 딛고 재활 하시곤 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시든


장모님이 95세로 생을 마감 하셨다


20일전 만나 점심을 사 드리고 같이 드시며 점심을 맛나게 먹고 참 잘 먹었다 하실 때


처가 농으로 물었다 엄마는 언제 돌아 가실거여?


몰러! 죽어야 되는데 안 죽네 하며 웃음으로 흘리시던 그 농담이


이렇게 빨리 생을 마감 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 헸다


아침 잘 먹고 동네 마을 회관에 다녀 오마 든 노인 네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고 그 길로 쓰러진지 3시간 만에 운명을 달리 하셨다



수년 전 아마 15~6년은 전 쯤인가 아내가 울면서 전화 왔다 어머니가 중풍(뇌졸증)으로 쓰러져 의식이 없노라고 빨리 가서 뵈야하고 뇌졸증에 좋은 약을 드실 수 있도록 약을 지어야 한다고 하여 부랴 부랴 찾아가 보았더니 뇌졸증의 증상을 앓고 계셨지만 뇌졸증이 초기 단계에서 조치를 덕분에 다행히 건강에 지장 없이 지내시게 되어 얼마나 다행 스럽던지


그후 장모님은 중풍이 와서 몸이 성치 않다고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의사에게 병력을 말씀드리고 몸이 성치 않음을 이야기 하였지만 의사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곤 장모님의 손바닥으로 밀쳐보라고 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밀었더니 의사가 뒤로 동댕이 쳐지며 하는 이야기가 중풍은 커녕 맞은 흔적 조차도없다고 하시더 란다


최근  노환으로 다리가 아프셔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는데 1년전에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시다 벽을 짚고 일어 나시다 손바닥이 건조하여 미끌리며 넘어져 척추와 골반뼈를 다쳐 구급차를 타고 공주 의료원엘 가서 입원하게 되었는데


이제 노인네가 죽을려나 보다 이제 척추와 골반 뼈를 다쳤으니 일어나지 못 할거야 일어나 시긴 하더라도 오래 사시 틀렸을 거야 하는 예상을 깨고 일주일 남짓 병원에 계시다 교정 시술을 받고 멀쩡하게 일어나셔 참으로 장수 모양이라고 했었는데  


몇번의 중차대한 병을 딛고 일어서 이번에도 무슨 일이 있으실까 마음을 놓았는데 그렇게 운명 하셨다


장례식은 신풍장례식장서 영결식을 하고 생전 사시던 만천리 선영에 장인어른과 합장을 하였다


예로부터 매장을 해왔지만 최근 화장을 많이 하는 추세라 매장 의식을 보기가 힘이 들고 장인 어른도 매장을 했지만 수년이 지나 어찌 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금번 장례식시 매장 의식 사진을 남겨 두었다


어찌보면 영원히 사라 있을 법도 장례 모습이 아닐 런가 싶기도 하다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가면 육신사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 육신사는

충절의 일편단심이 느껴지는곳 두 군주를 모시길 거부한 충신의 정절이 느껴지는 곳이다


육신사, 대구광역사 달성군 하빈면 묘리 628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으로 일컫는 박팽년.성삼문.이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충정공 박팽년 선생만을 그 후손들이 모셔 제사지냈으나,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제삿날 사육신이 함께 사당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뒤부터 나머지 분들의 음식도 장만하여 함께 제사지냈다고 한다. 그 뒤 하빈사를 지어 이들에게 제사지내다가, 1691년(숙종 17) 낙빈서원을 지어 이들을 봉안하고 제사지냈다. 1866년(고종 3) 서원철폐령으로 낙빈서원이 철폐되자 제사를 지내지 않다가 유림들에 의해 그 자리에 사당을 세워 다시 사육신을 봉안해 왔다. 그 뒤 1974~1975년 사이에 '충효위인 유적화사업'에 의해 지금의 육신사를 건립하였다. <출처:달성군청>














대구광역사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 주변에는 삼가헌이라는 마을 이 있다 이곳 삼가헌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사육신 중 한명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이라는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 후손은 단종복위를 꽤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가문으로 사육신이 복권되면서 조선후기에는 관직에도 많이 진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잡은 달성군 하빈면에서도 양반들이 모여살았던 마을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달성 삼가헌, 달성군 하빈면 묘리 800
달성 삼가헌은 1769년 충정공 박팽년의 11대손인 삼가헌 박성수가 현재의 정침터에 지은 살림집이다. 이 건물은 처음에는 초가였으나 그의 아들인 박광석이 이를 헐고 1809년에 안채를, 18년 후에 새로 사랑채를 지었다. 1874년에는 박광석의 손자인 박규현이 파산서당으로 사용하던 건물에 누마루를 부설하여 별당채를 짓고 '하엽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는데, 하엽정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는 연당 역시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사랑채의 당호인 삼가헌의 유래는 건물 내부 벽에 걸린 '상가헌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삼가'란 천하와 국가를 바르게 할 수 있고, 벼슬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으며,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 있다'는 뜻이다. <출처:달성군청>

나라에 반역죄를 범하면 일가 친족을 몰사하는 제도가 있어 다른 이의 일가 친족은 모두 죽었지만 유독 박팽년의 후손만 살아 남은듯 하다.

세조 4 2 6 7
박팽년(朴彭年) 이미 공초(供招) 자복하여 옥중에서 죽으니,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박팽년·유성원(柳誠源허조() 등이 지난해 겨울부터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성승(成勝유응부(兪應孚권자신(權自愼) 함께 당파를 맺어 반역을 도모하였으니, 죄가 능지 처사(凌遲處死) 해당합니다. 청컨대 허조·박팽년·유성원의 시체를 (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매어 사방으로 잡아당겨 찢어죽이는 형벌인) 거열(車裂 )하고, 목을 베어 효수(梟首)하고, 시체를 팔도에 ()하여 보일 것이며, 재산을 몰수하고, 연좌된 자들도 아울러 율문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하니, (세조가) 명하기를,
"
친자식(親子息)들은 모조리 (목을 졸라 죽이는 형벌인) 교형(絞刑) 처하고, 어미와 ·처첩(妻妾조손(祖孫형제(兄弟자매(姉妹) 아들의 처첩 등은 극변(極邊) 잔읍(殘邑) 노비(奴婢) 영구히 소속시키고, ·숙부(伯叔父) 형제의 자식들은 지방의 잔읍(殘邑) 노비로 영원히 소속시키고,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세조 5 2 9 7
세조 박팽년(朴彭年) 아내 옥금(玉今), 김승규(金承珪) 아내 내은비(內隱非 내은금(內隱今첩의 한금(閑今)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성삼문(成三問) 아내 차산(次山 효옥(孝玉), 이승로(李承老) 누이 자근아지(者斤阿只)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주고……


 묘골마을 안쪽에 위치한 육신사는 세조 때 사육신인 여섯분을 모시는 사당으로 원래는 인근에 있던 낙빈서원내 있던 하빈사에서 모셨는데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0년대 전국적으로 실시된 '충효위인 유적화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원래 하빈사에는 박팽년만을 모셨으나 다른 사육신들은 후손이 없었기때문에 같이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충무공을 모신 아산 현충사와 비슷한 성격의 사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육신사는 문화재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역사적인 인물인 사육신을 모신 사당이라는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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