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70방의 추억>
— 술은 죄가 없다 —
1. 술 고래, 말술. 술 잘 마시는 사람들을 일컷는 호칭이다. 내가 생각하는 호주가 기준은 아래와 같다.
— 남의 술잔을 채울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내가 내 잔이 비어서 남의 잔을 채운다.
— 술자리를 즐겁게 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돌아가신 동아일보 김용정 선배께서 “술자리 대화 97%를 과점한다.”고 하실 정도다. 말로 재미를 더하는 스타일이다.
—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언행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주사? 물론 없어야 한다.
— 작취 미성? 그딴 게 없어야 한다. 술을 잘한다는 것은? 얼마나 잘 마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일찍 회복되느냐다.
— 나중에 술자리 뒷담화가 없어야 한다. 술자리 파하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잊어야 한다. 뒷담화 하면 안된다.
— 진상 짓거리? 하지 말아야 한다. 서빙하는 종업원원분들에게든, 술 시중드는 여성분들에게든.
— 술값 낼 줄 알아야 한다.
— 남한테 억지로 술을 권하지 않어야 한다.
그렇지 못했던 사람은 나랑 술 마실 일이 없다.
2. 어느 직종에 말술이 없겠냐마는 의사 분들 가운데 두 분이 기억난다.
3. 한 분은 간박사로 유명하신 분인데, 인사동 옛 민정당사 앞 이층 경양식당 梨花이화 단골이셨다. 들어가면 양쪽으로 4인 테이블이 쭉 있는 집인데, 거의 날마다 거기서 술을 잡수셨다. 항상 맨 안쪽 자리가 고정석. 화장실 가실 때마다 모든 테이블에 술을 따르고 받고 하셨다. 두 번만 다녀와도 폭탄주 20방 넘었다. 당시 폭탄주는 쏘폭이 아니라, 양주 폭탄주 가득이었다.
3. 한 분은 법의학자로 유명하신 분. 내 고교 동기 가운데 왕방과 마당발이 있다. 나는 왕발이고, 마당발로 통하는 친구. 그리고 띠동갑 12살 위인 원로 법의학자와 그 양반 갑장 사업가 넷이 술자리를 가진 적 있다.
약속 장소인 신사동 고깃집에 들어서자 이미 쏘폭 반폭을 말고 계셨다. 쇠고기를 먹지 않는 나는 거의 빈 속에 쏘폭을 들이켜야 했다.
친구분은 아주 재미있는 분이었다. 평상시 기사 딸린 벤츠를 타고 다닌다. 한데 기사는 딱 1차까지. 바로 차 몰고 기사 집으로 퇴근한다. 이 양반이 회사 택시를 서울에 천 대, 경기에 천 대 정도 갖고 있는데, 1차 이후 움직일 때 회사에 콜을 넣는다. 거의 동시에 택시가 대령한다. 코 앞에 다음 차 술집이 있어도 무조건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지불한다. 그러니 오너 콜 잡으면 그 날 횡재하는 날이다. 너도나도 잡을 수밖에.
암튼 그 날 넷은 4차까지 갔다. 1차는 쏘폭 반폭, 2차는 양폭 반폭이었다. 대략 70방 안팎 정도를 네 명 모두 사이좋고 즐겁게 마셨다. 오후 6시에서 담날 새벽 두 시 정도까지, 무려 여덟시간에 걸쳐. 재미있는 얘기가 끊이지 않은 자리였다. 데미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소주잔이 양주잔 거의 두 배라는 것을 안 게 그 날이었다.
4. 흔히 “사람이 무슨 죄냐, 죄가 잘못이지.”라고들 한다. 왜 죄탓인가? 잘못은 지가 저질러 놓고.
간장게장이 밥 도둑? 밥은 지가 먹고 왜 간장게장을 도둑으로 몰아? 간장게장이 밥을 먹었나?
마찬가지다. 윤석열? 술 탓 아니다. 술 욕하지들 마시라.
5. 앞에 이야기한 두 의사 선생님, 지금도 건강하게 해야할 일 정확하게 하시면서 술 잡수신다. 80객이신데•••
6. 나는? 한 7년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었다. 2년 전쯤부터 다시 마신다. 그러다가 다시 절제하고 있다. 계엄 탄핵 정국에 데미지가 컸던 모양이다. 최근 20일 술 약속을 만들지 않았다.
내일 술 약속이 있다.
7. 칵테일 바에 가면 Boiler Maker라는 칵테일이 있다. 우리 양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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