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재명》
서언 (序言)
나는 지금, 예전에 대통령 하겠다며 나섰던 지금껏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조차 없는 전대미문의 인간말종 이재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려 한다. 그저 소설 같은 이야기로서, 웃기지도 않는 웃기는 이야기들이지만 기가 막히고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터이니 나는 이재명의 행적을 더듬어 살펴보려 한다.
한강이라는 작가가 소설 <소년이온다> 에서 그랬듯이 그것이 소설 속 이야기이면, 실명의 어느 누구를 욕되게 하고 앞뒤 사실관계를 왜곡하여 비틀어 놓아도 그것이 소설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될 바 아니라고 하였으니 나 또한 내가 하고 싶은 말, 말하고 싶은 나의 생각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다 이야기해도 괜찮을 거라 여긴다. 그 이야기들로 하여금 이재명의 명예라는 것이 쬐끔 훼손된들 나의 이 이야기는 소설이니까 세상은 관용으로 덮어 줄 것이라 여긴다. 한강에게 그랬던 것처럼ᆢ
나는 우선, 이재명이 나고 자랐다는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라는 곳을 찾아 그곳의 이야기로부터 <소설 이재명>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둑놈, 깡패가 될 줄 알았더니
권 노인의 연세는 구순이다.
형수한테, 보지를 찢어버리겠다는 둥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여 보확찢, 찢재명 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재명이라는 짐승이라 할 천하의 그 잡놈과 동갑내기 친구인 둘째 아들이 올봄에 안동 시내 고깃집에서 마을 사람들과 일가친지들을 청하여 구순 잔치를 열어 주었으니 노인의 연세는 올해 구순인 것이 맞다.
지통마 작은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권 노인은 여느 날처럼 이른 아침 어김없이 마을 어귀의 노인정으로 향한다. 노인정에는 세 살, 여섯 살 적은 노인의 재종 동생들도 미리 나와 앉았다. 작은 산골 마을에서 노인정에 모이는 노인이래야 예닐곱이 되지 않는다.
산골 마을의 작은 노인정에도 무더운 여름에 노인들 잘 지내라고 무더위 쉼터라는 간판을 붙이고 에어컨을 두대나 설치하여 올해처럼 무더운 여름날에도 용케 잘 지낼 수 있었으니 참으로 신통하고 고마운 일이다.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 우리나라 좋은나라다.
아침부터 선풍기로 감당이 안 되는 무더운 날씨에 지통마을 노인정의 에어컨은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돌아간다.
점심나절이 다가올 즈음 예전 지통 마을에 살았던 이재명에 관해 듣겠다며 나는 마을 노인정을 찾아왔다. 나는 음료수며 수박이며 먹을 것을 잔뜩 들고 노인정으로 들어서면서 앉기도 전에, 오래전부터 마을에 사셨던 연세 많은 분이 계시냐고 묻는다.
나이야 다들 많지만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을뿐더러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았노라 권 노인이 운을 뗀다. 구순의 권 노인은 열살 때 부모님 따라 지통골 입구 삼계리에서 이곳 산골 지통마을로 이사와 산밭 농사지으며 지금껏 살았으니 팔십 년을 지통마을에서 살았다.
노인정을 찾아든 나는 이재명의 어린 시절에 관해 기억나는 일이 있으면 얘기 좀 해 달라고 한다.
구순의 권 노인이 기억을 더듬어 이재명을 말한다. "재명이 고놈 어릴 적 동네서 클 때 참 되바라졌었니더." 쪼만한 녀석이 워낙 되바라진데다 마을 사람들 돈 들고 야반도주한 도둑놈, 노름꾼의 아들이라 도둑놈이나 깡패가 될 줄 알았더니 어찌 대통령할 꿈이나 꾸는지 참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모여 앉은 노인네들이 이구동성이다.
재명의 아버지 이경희는 1931년 신미생으로 노인보다 세 살이 많은데, 대구에 나가 잠시 대학물 먹었다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의 구장을 맡았다. 동네 구장을 맡은 경희는 구장 일을 맡은 한해 뒤, 마을의 농가에서 엽연초를 수매한 대금이 면사무소에 나와 있었는데 구장 경희가 마을 사람들께 가져다주겠다며 엽연초 수매 대금을 받아서 그날 밤 야반도주하였다.
남겨진 이재명의 가족 모두가 고향을 떠난 건 그로부터 3년 뒤였다. 그의 가족은 마을 사람들의 빚 독촉과 눈총을 견딜 수가 없어 아버지 경희처럼 야반도주하여 고향 마을을 떠났다. 재명이 고향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도 도둑놈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듣는 원죄가 거기에 있다.
재명은 어린 시절, 절반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가고 나면 재명은 새까맣게 그을린 반들반들한 몰골로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저지레 할 것 없을까 살피고 다니기 일쑤였다. 눈이 반들반들한 게 쥐새끼 같았다고 노인은 기억을 떠올린다.
재명은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해 1976년에 그 엄마를 따라 지통마을에서 도망 나갔는데 어릴 때부터 다른 애들처럼 개구쟁이 어린애의 모습이 아니라 되바라져서 어린애 같지 않게 못뙤게 굴었다. 재명은 자신의 말처럼 학교가 멀어서 학교에 못 간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 모두 학교 가는데 걸핏하면 학교 가지 않고 빈둥빈둥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못뙨 짓을 일삼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동네에서는 여시가 되려나 하고 수군 그렸다.
재명이는, 쪽 찢어진 작은 눈이 반들반들하여 눈치나 살살 살피며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남의 집 쇠붙이란 쇠붙이는 죄다 주워다 엿장수한테 가져가 엿으로 바꿔 먹곤 했는데 한번은 재명이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의 봄에 앞집에서 수리하려고 빼놓은 쟁기날을 훔쳐다 엿장수한테 갖다 줘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노인정의 노인들은 이재명의 기억을 그렇게 전한다.
어른이 된 지금 이재명의 모습이 어린 그 재명의 모습과 한치 다르지 않다고 마을 노인들은 입 모아 말한다. 앞집 쟁기날 훔쳐다 엿 바꿔 먹던 것처럼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뒤 구분도 하지않는 막무가내 인성 그것이 이미 그의 어린 시절로부터 확연히 나타났던 셈이다.
지금 이재명이 하는 짓이, 쟁기날 가져다 엿 사 먹었던 어린 재명이 하던 짓 그대로라고 노인들은 이구동성이다.
"재명이 그아 관상을 봐여 딱 하는 짓 그대로 아이래?" 하는 노인들의 말씀대로 그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야비하게 생겼다. 앙다문 입술과 가느다란 눈꼬리 하며 덤숭덤숭 삐죽삐죽한 몇 가닥 수염과 깊게 주름 잡힌 양미간의 그를 보면 그는 지독한 이기주의자, 표리부동한 모사꾼, 괴팍한 독선가, 간사한 간신배, 한순간 변하는 또라이, 안면 몰수 하는 철면피, 표독한 성미를 가진 그의 면면이 그 관상에 그대로 스몄다. 동물로 치면 하이에나, 독사쯤 되는 인상에다 사람으로 치면 뒷골목 반건달이나 양아치쯤 되는 관상이다.
그는 목소리나 어투 또한 얍삽하고 가볍기가 이를 데 없다. 야비한 야바위꾼의 모습이다. 그는 볼수록 야비하게 생겼다.
이런 자가 어찌 감히 대통령씩이나 꿈꾸는지, 이런 자를 어찌 대통령 시키겠다고 메달려 있는지?
이재명 그로 하여금 우리 사회의 옳고 그름과 정의와 부정의 보편적 가치 기준이 무너지고 있다. 또한, 도의와 상식이라는 관념적 규범도 흐려지고 있다. 사회악이 멀리 있지 않음을 나날이 절감한다.
지통마을 고향에서조차도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재명이다. 반백 년이 지났어도, 고향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 돈 들고 야반도주한 도둑놈, 노름쟁이의 아들이라 도둑놈이나 깡패가 될 줄 알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으니 고향 마을에서 찍힌 재명의 낙인은 더욱 선명하다. 마을의 노인들은 하나같이 재명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재명이 '화전민의 아들' 어쩌고 하면서 그토록 감성 팔이에 이용하는 고향이건만 정작 그는 고향 마을에서조차 도둑놈의 낙인이 선명할 뿐이다. 고향마을 노인들은 재명을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 자슥은 하는 짓이 쥐새끼니더
나는 지통마을 권 노인과 동네 노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나오면서 아랫동네 삼계리에 들러 그곳 사람들에게도 재명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려 한다. 삼계리에는 공무원을 정년 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사과 농사를 짓는 나의 지인 한분이 있다. 그 지인은 이재명과 삼계초등학교 동기인데 아마 이재명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터이니 기대를 해 봐야지.
한여름 무더위가 절정에 이른 지금 지통골 입구 삼계초등학교가 있는 삼계리에는 사과 과수원의 녹음이 온 동네에 짙었다. 아침나절 햇살이 뜨거워질 즈음이면 사과밭에는 방제작업 기계 소리가 요란하다. 안개인양 흩날리는 농약의 분무가 온통 뿌옇다.
예전 동구밖 과수원길의 정취는 바랄 수도 없다. 군 의장대 사열병의 모습으로 촘촘히 줄지어선 과수목의 모습은 가히 사과를 생산하는 공장이라 할 것이다. 과일 농사도 이미 제조업이 아닌가 싶다.
삼계리 마을 초입 과수원 언저리에서 나는 나의 지인을 용케 만났다. 나는 농삿꾼 모습의 지인을 얼른 보질 못하였지만 지인이 지나는 나를 먼저 알아보았지. 옷을 툭툭 털고 나오는 지인과 악수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눈앞의 개울가 큰 그늘 아래의 정자에 올랐다.
예전 여기 초등학교에 같이 다녔다는 이재명에 관한 이야기 좀 해달라는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인은 속사포처럼 이재명을 이야기 한다.
"그 자슥은 하는 짓이 쥐새끼니더, 글마는 친구도 아이니더."
첫마디를 이렇게 말하는 지인의 기억에 남은 이재명이는 어린 시절 체구가 쪼그맣고 기가 죽어 있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 외톨이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존재감이 없었던 재명에 대한 어린 시절의 특별한 기억은 없지만, 지각과 결석 자주 하는 도촌리 지통마라는 지독한 골짜기 동네에 살았던 아이라는 희미한 기억과 보통 아이와는 조금 다른 이상한 아이였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지인은 재명과 어린 시절 고향 친구지만 "인간 말종 글마가 고향이 안동이라고 씨부리는 거는 안동 욕 비는 기니더." 라며 양반고을 안동 사람답지 않게 언사가 매우 거칠다.
5학년쯤에 담임 선생님이 여선생님이었는데, 어느 날 한 번은 학교도 이틀씩이나 빼먹고, 운동장의 풀 뽑기에도 나오지 않아 담임 선생님께 회초리를 맞았는데 손바닥을 다섯 대쯤 맞던 재명이가 선생님에게 대뜸 "에이 씨발년아 와 때리노?" 하며 선생님을 확 밀치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 집으로 가버렸다. 이일로 재명의 어머니가 학교에 몇 번을 불려다니며 온 학교가 떠들썩하였다. 재명이가 지 형수한테 했던 그 욕이 이때 각인되어 잠재된 것이 아닌가 싶다. 될성부른 싹수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이재명은 어린 시절부터 싹수가 노랬던 셈이다.
어쨌거나 도지사,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야당대표인 친구를 자랑스러워 하기는커녕, 친구가 아니라 인간말종이라 말하는 재명의 고향 친구인 나의 지인은 도무지 재명의 고향 친구가 아닌 듯하다. 지인이 그러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선생님에게 그 일이 있었던 이후 지인은, 재명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기때문이다. "칼로 선생을 찔러 죽이고싶다." 는 말을 재명에게 직접 들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을 생생히 기억하는 지인은 그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일그러진다.
지금부터 나는 이재명의 적나라한 실체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갈 것이다.
ᆢ(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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