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힘든데) - 正弼 이옥균
취업하고 난 4년 뒤에 모기업(母企業)에
회사가 합병되었다.
같이 근무하던 상사들은 전부 퇴사를 하고
나만 사무실 직원으로 남아서
모기업(母企業)에 들어갔다.
(재단기 사업부)가 생겼다.
타부서에 차출된 인원들로
부서장과 차장급, 과장급, 대리급으로
관리자들이 들어오고
현장에는 기존 Member에
다른 사업부에서 차출되고
부족한 인력은 신규 채용했다.
두려움과 함께 기대감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그 기대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새로 차출되어 온 관리자들이
업무를 조금 파악하고는
사업 Item을 무시하더니,
나를 포함해서 기존 Member를
대놓고 업신여긴다.
일본식민지하에 일본사람을
황국신민(皇國臣民)이라 하고
조선사람들을 ‘이등 신민’으로
구분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소속이 다르고 환경이 달랐다고
같은 Owner(사장)의 회사인데
능력은 확인도 안 하고 대놓고 차별을 한다.
자기네들 업무파악을 위해 나를
이렇게 끌고 저렇게 끌더니
일 한번 제대로 시켜보지 않고는
내 자리가 없어졌다.
어린 나이지만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힐 일이다.
결혼 3년 차에 아이도 있었지만
‘젊다’라는 생각만으로
평생 처음으로 사표를 썼다.
4년간 후회 없이 열심히 일하며
이것저것 다 섭력(涉歷)했으니
두려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어 후련했다.
개인사업 하는 친구와
한동안 하지 못한 낚시 하러 갔다.
누적된 피로가 풀려 좋았고,
오랜만에 자유를 누리고
집 앞에 도착했더니
반가운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업부는 다르지만,
오래전부터 나를 어엽게 봐주신
경리부서장 정00 차장님이다.
그분과 같이 한 술자리는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다.
성품이 차분하고 인자하신 차장님이 맥주를 몇 잔 드시고
“뭐가 힘든데?” 첫 마디를 하신다.
한동안 창문 밖을 보며 뭐가 힘든지 생각을 해봤다.
군 생활을 할 때 근무처에서 부사관들이 괴롭혀
대놓고 대들다가 ‘하극상’ 처리되어
영창을 보낸다고 할 때도
굳건하게 버텨온 내가 아니던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퇴사할 명분은 없다는 생각이 문턱 들었다.
참으로 묘한 질문에 ‘퇴사’는 없던 거로 끝이 났다.
그 뒤로 정 차장님의 가르침과 내 노력이 어울려 져
나는 젊은 나이에 사업부를 3개 거느린 수장이 되었다.
그분은 전무이사를 역임하시고 정년퇴직을 하셨지만
지금도 전화해서 안부을 묻기도 하고
1년에 한두 번은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한다.
33년 동안 한결같이 나에게 정신적 지주(支柱)가
되어 오신 분이다.
재산을 다 탕진할 때 “뭐가 힘든데?”로
버터게 된 것도 사실이다.
사업을 하다가 격랑(激浪)을 만나면
나는 “뭐가 힘든데?”되물어본다..
님은
“뭐가 힘든데?”
취업하고 난 4년 뒤에 모기업(母企業)에
회사가 합병되었다.
같이 근무하던 상사들은 전부 퇴사를 하고
나만 사무실 직원으로 남아서
모기업(母企業)에 들어갔다.
(재단기 사업부)가 생겼다.
타부서에 차출된 인원들로
부서장과 차장급, 과장급, 대리급으로
관리자들이 들어오고
현장에는 기존 Member에
다른 사업부에서 차출되고
부족한 인력은 신규 채용했다.
두려움과 함께 기대감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그 기대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새로 차출되어 온 관리자들이
업무를 조금 파악하고는
사업 Item을 무시하더니,
나를 포함해서 기존 Member를
대놓고 업신여긴다.
일본식민지하에 일본사람을
황국신민(皇國臣民)이라 하고
조선사람들을 ‘이등 신민’으로
구분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소속이 다르고 환경이 달랐다고
같은 Owner(사장)의 회사인데
능력은 확인도 안 하고 대놓고 차별을 한다.
자기네들 업무파악을 위해 나를
이렇게 끌고 저렇게 끌더니
일 한번 제대로 시켜보지 않고는
내 자리가 없어졌다.
어린 나이지만 기가 차고
말문이 막힐 일이다.
결혼 3년 차에 아이도 있었지만
‘젊다’라는 생각만으로
평생 처음으로 사표를 썼다.
4년간 후회 없이 열심히 일하며
이것저것 다 섭력(涉歷)했으니
두려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어 후련했다.
개인사업 하는 친구와
한동안 하지 못한 낚시 하러 갔다.
누적된 피로가 풀려 좋았고,
오랜만에 자유를 누리고
집 앞에 도착했더니
반가운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업부는 다르지만,
오래전부터 나를 어엽게 봐주신
경리부서장 정00 차장님이다.
그분과 같이 한 술자리는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다.
성품이 차분하고 인자하신 차장님이 맥주를 몇 잔 드시고
“뭐가 힘든데?” 첫 마디를 하신다.
한동안 창문 밖을 보며 뭐가 힘든지 생각을 해봤다.
군 생활을 할 때 근무처에서 부사관들이 괴롭혀
대놓고 대들다가 ‘하극상’ 처리되어
영창을 보낸다고 할 때도
굳건하게 버텨온 내가 아니던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퇴사할 명분은 없다는 생각이 문턱 들었다.
참으로 묘한 질문에 ‘퇴사’는 없던 거로 끝이 났다.
그 뒤로 정 차장님의 가르침과 내 노력이 어울려 져
나는 젊은 나이에 사업부를 3개 거느린 수장이 되었다.
그분은 전무이사를 역임하시고 정년퇴직을 하셨지만
지금도 전화해서 안부을 묻기도 하고
1년에 한두 번은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한다.
33년 동안 한결같이 나에게 정신적 지주(支柱)가
되어 오신 분이다.
재산을 다 탕진할 때 “뭐가 힘든데?”로
버터게 된 것도 사실이다.
사업을 하다가 격랑(激浪)을 만나면
나는 “뭐가 힘든데?”되물어본다..
님은
“뭐가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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