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深淵) ]

■ the brillant Abyss(눈부신 심연 : Helen Scales / 영국 해양생물학자)를 읽고서...

엉겁결에 지루할 법한 과학서적 한 권을 끈기있게 완독했다.

눈가에 돋보기 안경자국이 선명하도록 책상 앞에 앉아서 정독하기도 하고, 때론 침대 위에 편안히 누워서 읽다가 잠이 들 만큼, 책장을 넘길수록 묘하게도 점점 빠져들었던 흔ㅎ지 않은 독서의 기회였다.

제목처럼, 심연(深淵)은 ;

거시우주(大우주)와 미시우주(小우주: 입자세계)를 포함한 물리과학의 영역에서도 끝모를 시공간을 자각하며 무한(無限)과 무지(無知)의 개념으로 차용되고,

문화예술의 세계에서도 낭만적인 작가의 혼으로 둔갑하기도 하며,

종교와 철학의 깊은 경지나 성찰의 난해한 정신세계를 달리 설명할 길 없으면, 고심차게 끌어 들여서 멋적게 이용한다, 그 용어를...^^

또 때론, 연인들의 고뇌에 찬 사랑의 감성 속에도 그것은 은근히 기웃거린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 <심연>은 우리 거주행성 지구에서 여전히 미지의 미래 영역(후손들을 위한)으로, 아직 본격적으로 손타지 않은 채 남겨진 심해(深海/deep-sea)를 의미한다.

아마도, 저자(著者)는 그 단어(심연)를 사용하면서 과학학문의 건조한 이야깃거리들만 논하고 싶지 않았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관련 학자로서, 저자는 심해의 환경이 미치는 <해류(海流)>의 순환체계와 <기후(氣候)> 그리고 지구 <대기(大氣)>의 영향을 학문적으로 깊이있게 설명하면서도, 군데군데 감성적인 문장력도 드러내며 지루할 법한 독자의 이탈을 붙잡아 두었다.

웬지 절박함까지 느껴지는, 지혜로운 저술(著述)의 능력이며, 학자로서의 사명감이었다.

본격적인 산업문명의 등장과 함께, 화석연료들의 사용량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더불어 탄소배출량도 가속화 되어 기후의 온난화를 촉진시키며 작금 인류의 거주공간(지구)을 위험단계까지 상승시켜 놓은 현실을 심해의 순환시스템과 관련하여 책에선 설득력있게 설명했다.

지상에서 배출된 탄소량의 많은 부분은 바다 생태계의 생명체들을 통해서 흡수되어 심해에 저장될 뿐만 아니라, 그 순환생태계를 통해서 많은 산소량도 생산하는 심해의 자연환경은 더욱 점증하는 탄소량의 배출로 그 건강한 순환계를 위협하며, 심해 환경의 교란과 지구의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설명하면서 경고를 잊지 않았다.

태양의 복사열도 바다를 통해서 흡수하여 지구의 가열을 방지하는데 크게 일조하지만, 심해 생태계의 교란이 지속되거나 확대되면, 결국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으로 지구의 생존환경은 급속히 황폐된다는 논리였다.

비록 관련 학자들의 한결같은 가설이지만, 현재 우리 행성에서 그 불안스런 가설의 조짐들은 실제로 겪고 있다.

그렇듯, 바다의 역할, 특히 심해의 건강한 환경이 그 만큼 중요한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육상의 화학폐기물들을 해양에 마구 투기하고 방치하여 심해의 오염까지 유발시키는 행위들은 미래 세대의 생존환경에 소탐대실(小貪大失)과 같은 큰 실수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심해는 미래의 식량자원 뿐만 아니라, 신비한 의약재료와 산업자원의 숨겨진 보고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자원들의 채굴을 위해서 경제적 가치에만 혈안이 된 개발업자들을 앞세워 나라들마다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 공식적인 UN의 해양 단속기구를 등에 업고 연구 또는 탐사를 빌미로 심해의 자연환경은 이미 시험대에 올라있는 현실이란다.

그 자원들의 채굴을 위한 본격 개발이 시작되면, 밀림의 벌목들 처럼, 기존 심해의 환경과 순환체계가 순식간에 황폐화 되는 것을 저자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

개발과 동시에 아무리 세심한 복구 프로젝트를 함께 실행하더라도, 해양, 특히 심해환경이나 그 생명체들의 저속생장(低速生長)의 특성상 육상의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실상 복구는 요원한 현실이란다.

' 이제 우리는 살아 있는 지구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기회와 가능성을 마주한다.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또 너무 특별하고 소중해서 함부로 손대지 말아야 하는 장소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심해다. '

관련분야의 학자로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책의 서두에 심해를 그리 정의하며 소망했다.


책을 모두 읽고서, 창밖의 또 다른 심연의 세계, 때 이른 폭염으로 잔뜩 열기 머금은 하늘을 버릇처럼 올려다 보았다.

" 지루할 법한 과학서적인데, 한번 읽어볼래...? "

다독가(多讀家) 마누라에게 책을 슬쩍 보여주며 그리 권유했더니, 대답 대신 독서의 양(量)과 끈기도 절대 부족한 지아비의 돌출행위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환경보호를 부르짓는, 온통 우주에 심취한 별난 인생이고 보니, 비환경적 가정용 쓰레기의 배출량 적잖은 우리 가정부터 각성이 필요해서 권유했는데...

저자가 애타게 주창했던 심해의 환경보호는 먼 시간도 아닌, 당장 내 자식들과 손주들 그리고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면면히 그리고 건강한 그대로 물려줘야 할 숭고한 유산이다.

아무리 다급하더라도, 함부로 손대면 안되는 절대적 유산이다.

저자에게 심심(深甚)한 경의를 표한다.
 
글쓴이 - 초등학교 동기생 이종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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