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 엉 (兄)
- 천기수 (포항문학 51호 원고) -

어린 날, 우리집 마당에는 꿈처럼 자라던 아주까리 나무, 담장 아래에는 크고 작은 장독대, 마당 앞에는 작은 도랑이 흘렀다. 담밑에서 꽃들이 여린 몸을 흔들면 훌쩍 자란 동네 아이들의 키만큼 자란 덩굴이 담장을 타고 올랐고, 명절이 다가오면 새 옷을 입은 나는 코를 훌쩍이며 골목을 뛰어다녔다. 오! 우리들 가슴이 부풀 때마다 골목길은 점점 좁아졌지만,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누나가 어린 나를 데리고 삼류극장의 동시상영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조금씩 커가는 아이들은 약간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담장에 붙이고 키재기를 했다. 도랑물은 시간을 재촉하며 흘렀고, 테어나는 아이들의 숫자만큼 동네 대문에는 청사초롱이 달리기도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고물상 같은 형의 철공소를 찾았을 때 문의 입구에는 형이 벗어 놓은 십구 문의 신발이 놓여있었고, 마당에는 형이 이 세상애서 마지막 햇볕을 보며 심어놓은 고추가 높다란 고춧대 사이로 봄볕을 맞으며 쑥쑥 자라나고 그 옆에는 녹슨 쇠의 검붉은 기름때 낀 헌옷이 구석에 놓여있었다. 부모님의 기일(忌日)이면 빠짐없이 경주공원 묘지를 찾았던 형! 아무런 말 없이 고무다리를 끌며 침묵으로 서 있다가 가곤 했던 형이 지금은 그리움의 바늘이 되어 내 가슴을 찌른다. 막내인 나는 둘째 형을 무서워 했다. 동네에서 ‘돼지’로 불리며 늘 싸움을 평정하여 나도 어깨가 으슥하곤 했다. 철공소의 월급날이면 늦은 밤, 기름때 묻은 자전거에는 방금 구워 온 호떡이 하얀 봉지에 얹혀 실려 왔고 나는 잠에서 깨어나 입안에 따스하고 달콤한 ‘형의 하루 일당’을 먹었다. 어느 여름 날 철공소에 일이 없어서 방 한 구석에서 형이 ’희마졌데이‘ 하면서 누워있는데 초등 1학년이었던 나는 ’형!‘ 형이 놀고 있으니까 호떡도 못 먹잖아’ 하니까 철공소에서 단련된 형은 팔뚝으로 눈물을 닦고 그 큰 눈에 노을 물들 듯 엷은 눈물이 맺힌 것을 보았다. ( 형에게 차마 못할 몹쓸 나의 말이었다.)
어머니가 낮에는 노동일, 저녁에는 퉁퉁 부은 얼굴로 ‘엥그럽다’ ‘엥그럽다; 하면서 나뭇불로 해주신 수제비를 먹을 때 아주까리 이파리 사이에 떠오르던 수많은 별들! 오늘밤은 그곳에 일곱 명의 얼굴이 오순도순 모여 있다. 어느 공휴일, 축음기를 틀어놓고 들려주던 이난영, 남인수, 배호 그리고 형이 가장 좋아하던 최희준 노래 ’하숙생‘ - 인생은 나그네 기 – 이 - ㄹ 의 가사처럼 형은 어느 별의 나그네로 살고 있을까? 아이스케키 장사하면서 만화가게를 하고 싶다고, 이 하꼬방이 싫어서 볕이 잘 드는 이층집에서 하늘을 보며 살고 싶다고 했었지, 별바다는 무지개로도 햇살로도 바람결로도 이슬방울로도 만날 수 없는 곳이지만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큰 지느러미 물고기, 작은 지느러미 물고기 어울리며 같이 놀 듯이 형의 호흡과 나의 호흡이 하늘꽃 언덕에서 성(城)속 같은 이끼가 덮인 산소의 자갈돌을 걷어내고 어린 시절 우리가 타고 놀던 높고 높은 둥둥 뭉게 구름을 타고 만나기로 하자. 그리운 혀 – 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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