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서태후의 기막힌 유언
미소년을 뽑아서 밤의 쾌락에 써먹은 서태후
찢어지게 가난한 말단직 관리의 딸인 난아는 돈과 권력의 위력을 진작에 알았지만 둘다 손에 잡을수 없는 파랑새였다.
확실한 방법은 오직 하나였으며 난아는 철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여자 아이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던 노래를 배우며 글을 익혔고 ‘황제 소녀경’ 같은 성의학서를 탐독해 방중술도 배웠다.
열여섯살이 되어서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자금성에 들어가게 되었다.
방방곡곡에서 뽑힌 내로라하는 미인들 수백명이 우글거리는 궁궐에서 어떻게 하면 황제 함풍제의 눈에 띄어 그의 품에 안겨 혼을 빼버릴 수 있을까?
난아는 내시에게 돈을 주어, 함풍제의 일정을 미리 알고 산책하는 길섶 숲속에 숨어 갈고 닦은 꾀꼬리 목소리로 함풍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난아는 그날 이후로 연회 자리마다 노래를 불렀고 밤이 깊어져서 연회를 마치면 얼큰하게 술이 오른 함풍제는 으레 난아의 허리를 껴안고 황제 처소로 가는 게 일상사가 되었다.
난아는 화려한 방중술을 구사하여 함풍제의 혼을 완전히 뺄 뿐 아니라 마침내 아들까지 낳았다.
함풍제에겐 황후 동태후가 있었지만, 아들이 없던 차에 난아가 아들을 출산했으니 기쁨에 입이 찢어졌고 말단 후궁 난아는 서태후가 되었다.
정실인 동태후는 후덕한 황후로서 서태후가 낳은 아들을 끔찍이도 귀여워했다.
동태후는 서태후가 낳은 아들을 돌보고 서태후는 오로지 함풍제가 다른 궁녀에게 곁눈질을 못하게 온갖 방법을 동원해 미모를 유지했다.
서태후가 매일 밤마다 함풍제의 진을 모두 빼먹은 탓인지 함풍제는 서른 한살에 이승을 하직했다.
1861년 청나라는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며 여섯살 아들 동치제가 황제에 오르자, 서태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됐다.
그렇게 권력의 맛을 보았으며 재물하고는 또다른 맛이고 더 달콤했으며 무소불위의 서태후를 막을 자가 아무도 없었다.
아편전쟁 때 불타버린 이화원을 더 크고 화려하게 짓고 호수를 넓혀 뱃놀이를 즐겼다.
서구열강이 호시탐탐 청을 노리고 일본은 나라를 뜯어 먹으려고 협박을 하는데도 서태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쾌락에 빠졌다.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우세한 함대와 많은 병력을 가졌음에도 청군은 전함 다섯 척을 침몰당하면서 대패하고 일본에 백기를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강병을 육성할 군자금을 쾌락을 위해 이화원 재건에 쏟아부었으니…
서태후는 패전 후에도 권력을 틀어쥐고 전국에서 미소년을 뽑아서 이화원에 가둬두고 밤의 쾌락에 써먹었고 나이 지긋한 시종이 미소년 둘을 뽑았다.
“너희 둘이 오늘 밤에 태후 마마의 시중을 들어야 하느니라.”
두 미소년은 사시나무처럼 떨었고 시종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마마를 시중들 때 꼭 지켜야 할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 마마의 눈과 마주치면 안되고
둘째 애지중지하시는 마마의 긴 손톱이 부러지면 네놈들 목이 성치 못할 것이며
셋째 마마께서 만족하시지 못해도…” 하며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였다.
어둠살이 내리자 서태후의 방안에는 붉은 촛불이 켜졌고 발가벗은 두 소년이 들어왔다.
“손을 치워라” 하는 목소리에 소년들이 바들바들 떨면서 사타구니를 감쌌던 두손을 떼자 비스듬히 누운 서태후가 배시시 웃었다.
광란의 밤이 지나가자 미소년 둘도 서태후도 모두 축 늘어졌고 서태후가 나가라고 하는 손짓을 하자 소년들은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뒷걸음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으악.”
“으악.”
두번의 비명소리와 함께 싱싱한 선혈이 창을 붉게 물들였다.
여섯살에 황제가 된 동치제의 나이가 한살 한살이 더 먹어가자 불안을 느낀 것은 서태후다.
동치제가 머리가 굵어지면 어미 서태후의 섭정을 막고, 자신이 직접 황제 권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서태후는 며느리인 효철의 황후를 아주 싫어했고 동치제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어린 신혼부부의 합방을 훼방놓았다.
진수성찬을 먹어 힘이 넘치는 새신랑이 아리따운 새신부와 함께 합방하지 못하니 미칠 지경이 됐을 때에 서태후의 사주를 받은 시종이 그를 색주가로 데려갔다.
질펀한 술판 후에 기녀와 동치제는 금침속 환락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고 불과 열아홉의 나이에 동치제는 매독으로 죽었다.
서태후는 동치제의 사촌이자 자신의 조카 광서제를 황제로 앉혔으며 그의 나이 이제 네살, 또 다시 서태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됐다.
47년동안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섭정한 서태후가 마지막에 앉힌 꼭두각시 황제가 바로 3세의 푸이(선통제)였다.
서태후는 70세가 되도록 무수한 미소년들의 목을 날리고 72세에 죽으면서 기막힌 유언을 남겼다.
“앞으로는 여자가 권력을 잡지 말도록 하라.”
청 왕조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옮겨온글 -
[출처] 청나라 서태후의 기막힌 유언|작성자 청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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