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의 아내를 노리는 정대감

 
 
머슴의 아내를 노리는 정대감

평안도 초산 고을에 정씨 성을 가진 토반이 살고 있었는데 조상에게 물려받은 토지가 많고, 글줄이나 읽은 터라 마을 사람들은 그를 정대감이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정대감은 환갑의 나이였지만, 먹고살 게 충분하고 몸이 편하다 보니 자연히 생각나는 것은 부질없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고을에서 얼굴이 반반한 여자가 있으면, 논마지기를 얼마간 떼어주고 얻은 첩이 10명이나 되었지만 그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정대감 집에는 양극대라는 젊은 머슴이 있었는데 그는 배우지 못했지만 무척 영리한 사람이었습니다.

양서방에게는 얼굴이 유달리 아름다운 처가 있었고 정대감은 어떻게 해서든지 양서방의 처를 손아귀에 넣을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새벽 정대감은 양서방을 불러들였습니다.

“내 나이 이미 육순이라 몸이 점점 쇠약해지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몸보신을 해야겠네.

이럴 땐 산딸기가 최고라고 하니 오늘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산딸기 서말을 따와야겠네.”

말도 안 되는 정대감의 요구에 양서방은 그렇게 하겠다고 공손히 대답하였습니다.

“다행히 자네가 산딸기 서말을 따오면 그 수고 값으로 돈 스무 냥을 자네에게 주겠네.

하지만 만약에 산딸기를 따오지 못하면 자네 것을 무엇이든 나에게 넘겨줘야 하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네 처라도 내가 원하면 내놔야 하네“

무슨 생각에서인지 양서방은 그렇게 하겠다고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정대감은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생색을 내며 돈 20냥을 선뜻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양서방이 정대감의 검은 속내를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별로 근심하는 기색도 없이 자기 처에게 귀속으로 몇 마디 일러주고 산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같이 양서방이 돌아와 깊은 산중에 산딸기가 무더기로 열린 곳이 있어 따려고 하였는데

난데없이 뱀이 나타나 하마터면 물려 죽을 뻔했다고 능청을 떨자 정대감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뭣이 이놈아 동지서섣달 눈밭에 대체 웬 뱀이란 말이냐!“

”하오면 동지섣달의 산딸기는 어인 분부이시옵니까?“

정대감은 아차 싶어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으락푸르락 할 뿐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애를 쓰며 자는 자기 꾀가 허사로 돌아간 데다가 미리 준 스무 냥이 너무나도 아까웠습니다.

그날 이후에도 정대감은 어떻게든 양서방의 처를 가로채기 위해 계속 궁리하였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자 정대감의 맏아들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나귀에다 책과 돈을 싣고 떠나려는데 정대감은 양서방을 딸려 보내며 아들을 따로 불러 몰래 말하였습니다.

”네 저놈 양서방이 비위에 거슬려 명이 줄어들 것 같으니 한양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큰물에 빠뜨려 없애버려라.“

양서방은 오랫동안 마누라와 헤어지는 것이 다소 섭섭했지만, 한양 구경을 하게 된 것이 한없이 즐겁기만 했습니다.

안주의 청천강변에 이르러 양서방이 배를 잡아 강을 건너려 했는데 대감 아들은 풍치가 좋다는 핑계로 굳이 강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자고 우겼습니다.

아직 봄이기는 해도 밤바람이 차가웠지만 주인집 아들이 고집하니 영리한 양서방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대감 아들은 평평하고 좋은 자리를 놔두고 언덕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귀는 언덕위 나무에 메어놓고 돈과 책은 자기 머리 밭에 둔 채로 발을 물가를 향해 두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양서방에게 자기 발밑에 누워서 잠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양서방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는 듯하여 자는 척하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대감 아들이 잠깐 잠이 들자 양서방은 살금살금 일어나 책과 돈 꾸러미를 자기가 누워 있던 곳에다 놓고 자기는 대감 아들의 머리맡에 가만히 누워 동정을 살폈습니다.

한밤중이 됐을 무렵 잠을 자던 대감 아들이 잠깐 깼는지 기지개를 켜는 척하면서 자기 발밑에 있는 것을 두 발로 힘껏 걷어찼습니다.

물속으로 묵직한 것이 첨벙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 모습을 본 양서방은 등에서 식은땀이 났습니다.

아침이 돼서야 눈을 뜬 대감 아들은 있어야 할 책과 돈은 없어지고 죽어 없어져야 할 양서방이 머리 밭에서 자고 있자 대경실색하였습니다.

그제서야 일어난 양서방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척했습니다.

양서방은 귀중한 책과 돈을 언덕 위에 놓아두면 도둑맞을 염려가 있어 도련님 발밑에 둔 것인데 잠결에 도련님이 물속에 차 넣은 것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책이 없어져 과거 시험을 보기 전까지 공부도 할 수 없자 난감해진 대감 아들은 땅을 치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양서방을 나무랄 수도 없어 힘없이 안주 읍내로 들어섰습니다.

간밤부터 요기를 못 한 그들은 허기를 참기 어려웠습니다.

대감 아들은 주머니에 남은 돈이 있어서 궁하지는 않았으나 가뜩이나 미운 양서방에게 밥을 사 먹이는 것조차 싫었습니다.

그는 한참 궁리하다가 양서방에게 나귀 고삐를 쥐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불량배가 많아 눈 한 번 잘못 마주치면 몰매를 맞을 수도 있으니 자기가 읍내에 있는 친구를 만나고 올 동안 눈을 꼭 감고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양서방은 나귀 고삐를 한 손에 꼭 붙들고 눈을 감았습니다.

잠시 후 슬그머니 눈을 떠보니 대감 아들이 혼자 주막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양서방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사방을 둘러보니 마침 점잖게 생긴 노인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노인을 불러 자기는 평안도 사람으로 한양에 가는 도중 노자가 떨어져 나귀를 팔려고 하니 싼값으로 사가라고 하였습니다.

노인이 솔깃하여 값을 물어보니 열량만 달라고 했으며 보통 나귀 값의 반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노인은 선뜻 열량을 주었고 양서방이 나귀 고삐를 건네주려다 말하였습니다.

”노인장 나귀를 팔고 나니 섭섭하고 아까워서 그러니 나귀 고삐를 한 뼘만 잘라주시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 고삐를 잘라주고는 나귀를 끌고 바삐 가버렸습니다.

양서방은 돈 열냥을 허리춤에 감춘 뒤 한 뼘 되는 나귀 고삐를 손에 쥐고 다시 눈을 감고 서 있었습니다.

한참 후 대감 아들이 밥을 먹고 돌아와 보니 나귀가 보이지 않아서 양서방을 다그치자 양서방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고삐 쥔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기 있지 않습니까?“

대감 아들은 눈을 뜨고 똑똑히 보라며 소리를 지르자 양서방은 그제서야 눈을 뜨고 흙에 놀라는 시늉을 하며 어떤 놈이 고삐만 자르고 나귀를 훔쳐 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도련님이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해서 이 꼴을 당했다며 투덜거렸습니다.

대감 아들은 분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당장 죽여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양까지 동행하다가는 더 큰 화를 당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양서방을 그냥 집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대감 아들은 지필묵을 구해와 그간 사연을 적어 보내려고 했는데 양서방이 중간에 무슨 조작을 할지 알 수 없어 불안했습니다.

그는 양서방에게 저고리를 벗고 돌아서라고 한 뒤 손이 닿지 않는 등에 글을 썼습니다.

‘이놈으로 인해 잃지 않을 책과 돈을 잃고 나귀마저 잃었습니다. 집에 돌아가거든 즉시 하인을 시켜 죽여 없애도록 하옵소서’

대감 아들은 양서방에게 집에 돌아가 아버지께 등의 글씨를 보여드리라고 말한 뒤 혼자서 한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양서방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를 칭찬하는 내용은 아닐 것 같아 지나가는 행인 중에 글을 알 만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스님을 보자 양서방은 그 앞으로 다가가서 넙죽 절을 하며 말하였습니다.

”스님 무례한 청이지만 이것을 좀 봐주십시오.“

윗 저고리를 벗고 등을 보이자 스님은 그 내용을 읽어주었습니다.

내용을 듣고 난 양서방은 그간 사정을 얘기하고는 돈 닷 냥을 부처님께 시주할 테니 자기가 부르는 대로 고쳐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양서방이 먹과 붓을 구해오자 스님은 그를 고쳐주었으며 집으로 돌아온 양서방은 곧장 대감을 뵙고 등의 글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연히 양서방이 죽었을 거로 생각하고 그의 처를 소실로 들이려던 터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양서방으로 인해 잃은 책과 돈을 얻고 또한 나귀도 얻었습니다.

많은 도움을 받고 큰 공을 세웠으므로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그에게 기와집 한 채와 논밭을 주십시오.’

정대감은 어찌 된 일인지 묻고 싶었으나 그간 양서방의 행동으로 보아 진상을 알기가 어려울 것 같아 꾹 참았습니다.

또 그의 꾀에 넘어가 더 많은 걸 빼앗길까 봐 울며 겨자 먹기로 집과 논밭을 주었습니다.

그해 여름 한양에 갔던 정대감의 아들이 과거에 낙방하고 돌아와 그간 사정을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양서방은 그사이 집과 논밭을 팔아 타지로 나간 후였고 정대감과 아들은 그들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한탄했다고 합니다.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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