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로 얻은 남편

옛날 평양에 월선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인물도 곱고 글도 많이 배운 데다, 노래도 잘 하고 춤까지 잘 추어 평양에서 제일가는 기생이었다. 

그래서 모은 돈이 수십 만금이고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살다보니 아무도 그녀를 함부로 넘보지 못했다.

월선이는 돈을 벌 만큼 벌자 기생 노릇도 그만두고 남편이나 얻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월선이는 과연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지 알 수 없었으며 궁리 끝에 광고를 내기로 하였다. 

광고 끝에다 이글의 짝을 채우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과 재산을 모두 바치겠다고 했으며 글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吾家有一酒 大甁小甁 二十四甁       

오가유일주 대병소병 이십사병

金氏飮許之 李氏飮許之

김씨음허지 이씨음허지

飮之以後 醉不醉 吾不關之

음지이후 취불취 오불관지

 

나의 집에 술이 있는데, 큰 병과 작은 병이 스물네 병이다.

김씨가 먹겠다고 해도 이씨가 먹겠다고 해도 모두 허락하는데,

그 사람이 취하고 안 취하고는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어찌됐든 글귀의 짝을 채우면 자신의 몸과 재산을 바친다는 소리에, 글깨나 한다는 사람은 물론이고 온갖 천하 건달들이 월선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갖가지 별별 재주를 다 부려보았으나 어느 누구도 그 짝을 제대로 채우는 자가 없었다. 

이윽고 글 잘 짓기로 유명한 어떤 선비가 이런 글을 지었다.

吾家有一書 大冊小冊 二十四冊

오가유일서 대책소책 이십사책

金氏學敎之 李氏學交之

김씨학교지 이씨학교지

敎之以後 通不通 吾不關之

교지이후 통불통 오불관지

  

나의 집에 책이 있는데 큰 책과 작은 책이 스물네 책이라.

김씨가 배우겠다고 해도 이씨가 배우겠다고 해도 모두 가르치되,

가르치고 난 후에 통하고 못 통하고는 내가 관계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하여 선비의 글과 월선이의 글이 짝이 아주 딱 맞게 되었다.

그런데 월선이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이었고 선비가 어째서 안 되느냐고 물었다.

선비가 제자에게 글을 가르칠 때에는 알게 하려고 가르치는 법인데 제자가 알지 못하는 것이 어째서 선비와 관계가 없단 말이오?

이렇게 해서 선비는 쫓겨나고 말았으며 다시 숱한 놈들이 덤벼들었으나, 대개는 실패하고 한 의원이 들어가게 되었다.

의원이 들어가서 월선이의 글에 그 짝을 채우는데 아주 그럴 듯했다.

吾家有一藥 大貼小貼 二十四貼

오가유일약 대첩소첩 이십사첩

金氏病服之 李氏病服之

김씨병복지 이씨병복지

服之以後 效不效 吾不關之

복지이후 효불효 오불관지

 

나의 집에 약이 있으니 큰 첩과 작은 첩이 스물네 첩이라.

김씨의 병에도 이씨의 병에도 다 먹이되,

먹고 난 후에 효험이 있고 없고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짝은 잘 맞았으나 역시 월선이가 안 된다고 하면서 의원이 약을 지을 때에는 이약을 먹고 병이 낫겠지 하고 짓지 낫지 않을 텐데 하고 지었겠소? 

효험이 없다는 것이 어찌하여 의원과 관계가 없단 말이오?

의원도 별수 없이 쫓겨났고 그뒤로 다시 별놈들이 숱하게 왔다갔지만, 누구 하나 합격하지 못했으며 이번엔 한 스님이 들어가 그 짝을 이렇게 채웠다.

 

吾家有一佛 大佛小佛 二十四佛        

오가유일불 대불소불 이십사불

金氏願禱之 李氏願禱之

김씨원도지 이씨원도지

禱之以後 福不福 吾不關之

도지이후 복불복 오불관지

 

나의 집에 부처가 있는데 큰 부처 작은 부처가 스물넷이라.

김씨의 소원도 이씨의 소원도 다 빌어주되,

기도를 한 후에 복받고 못 받고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역시 월선이가 안 된다고 하면서 부처님한테 빌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와서 비는데 어째서 복받고 못받는 것이 스님과 관계가 없단 말이오?

그래서 스님도 쫒겨났으며 그럭저럭 시일도 많이 지났는데 차림새가 무척 남루한 거지가 찾아와서 짝을 채우겠다는 것이었다.

월선이가 거지에게 짝을 채워보라고 하자 거지는 이렇게 읊었다.

 

吾家有一瓢 大瓢小瓢 二十四瓢

오가유일표 대표소표 이십사표

金氏宴乞之 李氏宴乞之

김씨연걸지 이씨연걸지

乞之以後 廢不廢 吾不關之

걸지이후 폐불폐 오불관지

 

나의 집에 바가지가 있는데 큰 바가지 작은 바가지 스물네 개가 있다.

김씨네 집의 잔치에도 이씨네 집의 잔치에도 가서 모두 구걸하되,

구걸 후에 그 잔치가 파할지 안 파할지는 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기생 월선이 거지의 말을 들은 후에 그렇지 그 집에 가서 얻어먹었으면 그만이지,

그 집 잔치가 파하고 안 파하는 것은 거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지 하며 만족스러워 했다.

 

그 거지는 기생 월선에게 장가를 들어서 질펀하게 운우를 나누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 옮겨온글 -

[출처] ♧ 시(詩)로 얻은 남편|작성자 청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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