奬忠壇公園


장충단공원은 1970년대 라디오만 툴면 흘러나왔던
기수 배호가 부른 < 안개낀 장충단 공원>으로
귀에 익었습니다.

서울 남산의 동쪽 끝자락 신라호텔 남단에
장충단공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예전 김일과 천규덕이 레슬링하는 곳,
홍수환 선수가 권투시합하던 곳,
굵직한 경기나 행사를 많이 했던 장충체육관 남단에
동국대학교와 접해 있습니다.


1.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 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 없이 쓸어 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2.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 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가면서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이곳 장충단공원은 우리의 애달픈 역사가 서려
있는 장소입니다. 원래 장충단은,
명성황후시해사건(을미사변,1895)때 궁에서
황후를 지키다가 전사한 호위대장 홍계훈을
비롯한 염도희 등 순국 장졸들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었습니다.
이후 명성황후시해사건 때 함께 순국한
궁내부대신 이경직을 비롯한, 임오군란,
갑신정변 당시에 순절한 문신들도 추가하여
장충단 제향 신위(奬忠壇 祭享 神位)에
배향하였습니다.
따라서 장충단에 대한 일반 민중의 경모심도
더욱 커졌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군악을 연주하고 군인들이
조총(弔銃)도 쏘았습니다.

그러나 1910년 8월 장충단은 일제에 의해
철폐되었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이 곳
일대를 장충단공원으로 이름 하여, 벚꽃을 심고
공원 시설을 설치하였으며, 상해사변에서 전사한
일본군 육탄 삼용사의 동상과 이토 히로부미의
개인 사찰 박문사(博文寺)를 건립하였습니다.

광복 후 육탄 삼용사의 동상과 박문사가 철거
되었고, 6·25전쟁으로 장충단의 전각과 부속
건물은 파손되었으나 장충단 비(奬忠壇碑: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호)는 다행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 장충단 비는 원래 신라호텔 영빈관 내에
있었는데, 1969년에 지금의 수표교 서편으로
옮겼다 합니다.

비의 ‘奬忠壇(장충단)’ 세 글자는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쓴 글씨이며, 뒷면에는
내부대신으로 을사조약 후 자결한 순국지사
민영환(閔泳煥)이 쓴 비문(碑文)이 새겨져
있습니다.
장충단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신라호텔 내
영빈관 자리가 유력하다고 합니다.
불과 백여 년이 지난 시기의 일인데 예전의
그 위치마저도 분명치 않은 것을 어찌 이해
해야 할까요. 또 호텔은 어이 지었으며?

배호의 구성진 노래로서만 들었던 장충단
공원이, 남녀의 사랑과 추억만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렇듯 민족의 애환이 서려 있는
역사적 장소라는 것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노래의 주인공처럼 따뜻한 어느 봄날,
안개 낀 장충단공원에 들러 낙엽송 고목 쓸어
안고 노래라도 흥얼거려 보아야 할까 봅니다.
혹여 멋진 사내 홍계훈 호위대장의 넋이나마
만나질지 또 알 수 있나요?
장충단에 진달래 활짝 피는 따스한 봄날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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