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이야기 - 돌아야 돈이다


靑綠(청록)골은 遊覽(유람)마을이다.

金剛山·雪嶽山 만큼은 아니지만
垂直(수직)으로 솟아오른 花崗巖(화강암)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絶壁(절벽) 사이사이 갈라진 틈으로 소나무가 뿌리를 박아 盆栽(분재)처럼 매달렸다.

이 溪谷(계곡) 저 溪谷(계곡)에서 모인 물은 제법 큰물을 이뤄 돌고 돌아 내리다가
 
瀑布(폭포)가 되어 絶壁 앞에 떨어지니 커다란 沼(소)가 생겼다.

絶壁(절벽) 反對便(반대편)에는
白沙場(백사장)이 제법 참하게 펼쳐져

여름이면 遮陽(차양)을 치고 물놀이며 뱃놀이를 하기에 安城(안성)맞춤이다.

그뿐이 아니다.
봄엔 진달래·철쭉이 온 마을을 꽃 동산으로 만들었다.

땅을 뚫고 새싹이 솟아오르면 겨우내
房(방)에 처박혀 글을 읽던 선비들은

踏靑(답청, 봄에 파랗게 난 풀을 밟으며
散策함)하러 끼리 끼리 靑綠골을 찾았다.

가을엔 滿山紅葉(만산홍엽)이 자지러져
丹楓(단풍) 行樂客(행락객)이 몰려들었다.

겨울이라고 靑綠골이 쥐 죽은 듯 조용한 건 아니다.

靑綠(청록)골 사냥꾼들이 잡아 놓은
곰이다 멧돼지다 사슴을 먹으러 오는
好事家(호사가)들이 제법 있었다.

또 大處(대처)의 눈을 避(피)해 반반한 색시를 꿰차고 靑綠골로 들어와

酒幕(주막)집 구석진 客房(객방)에 처박히 는 誤入(오입)쟁이들 德分(덕분)에 그런대 로 마을에 돈이 돌았다.

그런데 느닷 없이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大處에 疫病(역병)이 돈다는 所聞(소문)이 퍼지더니 行樂客의 발길이 서로 짠듯이
딱 끊겨버렸다.

疊疊山中(첩첩산중) 靑綠(청록)골엔 疫病 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行樂客도 들어오지 않으니 먹고 살 길이
寞寞(막막)해졌다.

나룻배 船着場(선착장) 옆에 자리 잡은
酒幕집 싸리 문짝 위에 달린 초롱불만
손님을 기다리며 바람에 깜박거릴 뿐

그 많은 客房(객방)에 불 켜진 房(방)이 하나도 없다.

酒幕집에 쇠고기·돼지고기를 갖다주던 푸줏간은 파리만 날렸다.

돼지를 키우고 닭을 키우는 陸氏(육씨)네 는 감자·고구마 살 돈이 없어 먹이를 못주니 돼지가 삐쩍 말라갔다.

菜蔬(채소) 장수도 農夫(농부) 林氏에게 밀린 외상값을 못 갚아 감자도 떨어지고

조금 남아 있는 고구마가 썩기 始作(시작) 해도 달리 손쓸 方途(방도)가 없었다.

農夫 林氏(임씨)도 두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菜蔬(채소) 장수에게서 밀린 代金(대금)도
못 받았는데
새로 農作物(농작물)을 줘봐야 외상값만 더 쌓일게 뻔했기 때문이다.

林氏네 밭에서 일하던 朴書房(박서방)도 일거리가 떨어져 집에서 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酒幕(주막)집에 손님이 들어 왔다.

千石(천석)꾼 富者(부자) 柳進士(유진사) 의 개차반 막내아들이 그 渦中(와중)에 색시를 하나 데리고 온 것이다.

손님은 先拂(선불)로 열냥을 酒幕(주막)집 酒母에게 건넸다.

손님이 房에 들어가자 酒母(주모)는
푸줏간으로 달려가 그간 밀렸던 외상값을 갚고 돼지고기 두근을 사왔다.
 
푸줏간 主人(주인)은 酒母한테 받은
열냥을 얼른 돼지 키우고 닭 키우는 陸氏 에게 갖다줘 밀린 외상값을 털어버렸다.

陸氏도 農夫 林氏에게 달려가 외상값을 갚았다.
 
林氏는 農事일을 거드는 朴書房의 품삯을 支拂(지불)했다.
 
돈이 생긴 朴書房은 酒幕에 가서 밀린 술 값을 다 갚고 술을 마셨다.

그때 헐레벌떡 大處에서 柳進士네 下人이 달려왔다.

下人은 막 색시 옷고름을 풀던 柳進士의 막내 아들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訃音(부음)을 傳(전)했다.

손님은 酒幕집에 先拂(선불)로 줬던 열냥을 다시 받아 들고 허겁지겁 酒幕을 떠났다.

열냥이 靑綠골에 떨어진 것도 아닌데
빚이 모두 없어지고 活氣(활기)차게
제 할 일을 하게 되었다.

돈이 그저 동네를 한바퀴 돌아 나갔을 뿐 인데 동네가 살아난 것이다.


農民新聞 조주청의 舍廊房이야기



















사진은 국채보상공원에 핀 매화꽃 (2020년 2월 16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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