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 수작 그리고 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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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이라 일컬어짐에 자타의 이견이 없고, 허구헌날 술 먹는 자랑이 하늘을 찌르다 못해 ‘술’을 주제로 한 작품전까지 연 권도경 작가로부터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들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세 가지가 술자리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짐작’(斟酌), 수작(酬酌), 참작(參酌)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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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짐작’의 짐(斟)에는 오늘날 빼갈잔같이 불투명한 잔의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런 잔에 술을 치려면 당최 얼마만큼 따랐는지 알 수 없으니 미루어 ‘짐작’하여 따를(酌) 수 밖에 없다. ‘수작’은 말 그래도 권커니잣커니다. 술 갚을 수(酬)에 술 따를 작(酌)이니 보탤 말이 무엇이랴. 끝으로 참작(參酌)은 “이리저리 비추어 보아서 알맞게 고려한다.”는 뜻이다. 실수나 범죄를 저지른 뒤에 그 “정상을 참작하여” 운운의 표현의 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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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 이 세 단어를 곱씹으면서 새삼 경탄을 했다. 술자리에서의 도리와 예의가 이 세 단어들에 담겨 있는 것이다. 얼치기 주당의 멋대로 해석을 곁들이자면 짐작은 미래의 일을 헤아리는 일이요, 수작은 바로 이 자리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맞춰 주는 행동이며, 참작은 일단 벌어진 일에 대한 관대함과 포용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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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를 갖고자 할 때 상대가 누구이며, 어떤 자리인지, 무슨 술을 어디쯤 되는 자리에서 베푸는 게 좋은지, 얻어먹는 자리라면 어느 정도로 얻어먹어도 무방한지, 누구를 추가로 부르면 자리에 흥을 더할 수 있으며, 또 누굴 호출했다가 초를 칠 지, 시원한 생맥에 치킨을 뜯으며 건배를 외칠 자리인지 깡소주에 조개탕 정도 먹으며 등을 두드려주는 자리인지를 ‘미루어 짐작’해야 즐거운 자리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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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몇 놈 부르지 뭐.”라고 해서 친구들 왕창 불러서 기왕 얻어먹는 것 잘 얻어먹자고 한우등심집으로 향했다가는 의절당하기 십상이다. 긴한 얘기 하자고 친구가 불렀는데 젊은 애들 분위기 즐기자며 뭔 클럽 비슷한 고막 찢어지는 집에 간다면 최소한 3년은 눈치바보라고 욕먹지 않으랴. 짐작의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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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수작이다. 예측하는 것은 짐작이지만 눈앞의 상대를 고려하고 배려하고 술잔을 독려하는 것은 수작이다. 술은 즐겁게 마시는 게 ‘국룰’이라지만 자식 새끼 속썩여서 가슴에서 피눈물나는 친구 앞에서 “무자식이 상팔자” 건배를 외치는 노총각 홀애비가 있다면 이 무슨 “개수작”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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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회사에서 잘리게 됐는데 그 칼을 휘두르는 임원을 두고 “자주성가한 멋진 사람” 이라고 칭찬한다면, 그게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맥주병으로 맞지 않으면 다행인 헛수작이 된다. ‘ 술을 함께 하는 상대의 분위기와 상황에 최대한 맞춰 주고, 축하와 위로와 공분과 슬픔을 나누는 것, 그것이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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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를 파했다. 그런데 정작 낸다고 하던 놈이 도망을 갔다. 남은 자들이 멍하니 서서 더치 페이를 위해 1/n을 계산하는 가운데 한 친구가 “이 자식하고 내 다시 술을 먹으면 성을 간다.”고 분노할 때 “걔 오늘 너무 취했잖아. 원래 그런 놈 아니야.”라며 감싸 줄 줄 아는 것이 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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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주망태가 된 사람이 술 내놓으라고 발악질을 하면 허허 이 자식 취했네 하면서 카카오택시 불러 냅다 던져 버리고 기사님 잘 부탁합니다 외치는 친구가 참작을 잘하는 친구다. 술 먹다가 꼬장부린 친구가 다음날 전화 와서 죽는 소리로 미안하다고 할 때 “너 어제 김이사한테 깨지는 걸 내가 봐서 참는다. 오늘 해장국이나 사.” 하며 형량(?)을 줄여 주는 행위가 ‘참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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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두고 보면 짐작과 수작과 참작의 도(道)는 술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을 대할 때 우리가 ‘미루어 짐작’하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 속사정을 헤아리지도 않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로 평가하고 규정짓고 제멋대로 쏟아붓다가 사람 잃고 유익도 없애고, 상처만 늘리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었는가. 최소한 우리가 ‘빼갈잔에 옌타이 따를 때’의 신중함만 갖춘다면 우리의 오해와 적의는 반 가까이 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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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의 기본은 권커니잣커니, 즉 수작이지만 술자리에서 오가는 것은 어찌 술잔만이랴. 즐거운 화제를 담고, 서로의 시름을 줄이는 이야기가 오가야 술자리는 기쁨으로 빛난다. 하지만 불판에 올린 고기 타도록 설교 늘어놓는 못된 사장에 빙의한다면, 그리고 충고랍시고 남 아픈 데를 콕콕 찌르는 것을 능사로 삼는다면,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이 말을 해야겠고, 감히 내 말을 끊으면 화를 내겠다는 각오에 충만하다면 그의 수작은 잘해봐야 헛수작, 나쁘면 개수작에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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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너무나 ‘참작’에 불공평하다는 생각이다. 내 편에게는 ‘정상 참작’의 여지가 바다와 같으나 남의 편에게는 참작해야 할 정상의 끝이 바늘보다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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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젊은 시절의 운동권 경력에 시비를 걸어 헌법재판관 자격이 있니 없니 하는 사람들이 총칼든 군인들을 국회에 보낸 이에게는 ‘오죽했으면’ 하는 오징어 먹물로 설경을 그릴 ‘참작’을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에게 거슬리는 말 한 마디를 하면 그가 왜 그랬을까 참작은 커녕, 천하의 패륜아에 몹쓸인간으로 몰아야 직성이 풀리는 참작(斬酌)을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어떤 화합이 이뤄지며, 타협이 존재하며, 참작할 정상이 정상적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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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술자리에 간다. 분위기를 잘 읽고, 어느 정도의 분위기를 내야 할지 짐작해 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게으르지도 게걸스럽지도 않게, 충분히 듣고 권하며 따르고 마시는 멋진 수작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행여 아쉽거나 모자란 점이 있어도 쾌히 참작하고 이해하여 다음을 기약해 볼 것이다. 우리 사는 이치도 이와 같기를….. 능히 짐작하고 쾌히 수작하며, 넉넉히 참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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