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신문맹인(新文盲人)》
☆한자는 이미 우리말이다.

MZ세대는 아니어도 신세대라 할 필자의 둘째 아들은 1989년생이다.
결혼하여 깔밤 같은 딸내미 하나 낳아 기르며 아이 하나둘 더 낳을 거라 하니 며늘아이가 기특하기 그지없다. 빠듯한 서울 생활에 앓는 소리 크게 하지 않고, 손 벌리지 않고, 묵묵히 잘 견디며 검약하게 사는 듯하니 그 또한 고맙고 대견하다.
아들은 지하철 계단 벽면에 붙어있는 청개구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공원의 숲으로 옮겨다 줄 만큼 심성이 반듯한 신세대 휴머니스터다.

이 신세대 아들이 얼마 전 재미난 얘기하나를 하였다. 회사의 자기네 부서 동료 후배가 우편물 수발실에 내려간다길래, '대한검정'이라는 곳에서 보내올 우편물이 있으니 함께 찾아오라고 부탁을 하였단다. 잠시 후 후배 직원이 돌아와 "아직 안 왔던데요." 하더란다.
늦어도 오늘쯤은 도착해야 하는데 이상하다 하면서 아들이 우편물 수발실로 다시 내려가 보았더니, 도착해 있는 우편물 봉투에는 大韓檢定(株) 仁川事務所라 적혀 있더란다.

후배 직원은 한자를 읽을 수 없는 신문맹인(新文盲人)이었다. 사흘 연휴를 4일 연휴로 알아듣는 신문맹인도 있다 하지만, 영어에는 능통하면서 한자는 읽을 수 없으니 이 또한 신문맹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신세대 아들은, 신세대 그 후배 신문맹인에게 도토리 키재기로 토끼 꼬리만큼이나마 세대차이를 느꼈을까?
아들은 중학교 때, 지네 엄마가 집에서 데리고 앉아 천자문 펼쳐놓고 한자에 관심 가질 만큼의 기초는 닦았다지만, 이후 대입 준비하느라 한자를 익힐 틈이 없었을 텐데 大韓檢定(株) 仁川事務所 정도는 읽을 수 있었던 모양이니 함께 신문맹인이 아니었던 것이 다행한 일이다.

요즘은, 신세대든 기성세대든 한자를 웬만큼 쓰거나 읽는 사람이 드물어져 한자를 별도로 공부해야 할 만큼 한자가 생경한 언어가 되고 있다. 그런데 기실, 수백 수천 년 동안 한자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한자는 중국어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언어가 되었다. 우리가 가진 어휘 가운데 한자 음절의 어휘를 제외하면 남는 어휘가 절반쯤이나 될까?
개인적으로도 가진 어휘가 풍부해야 말도 글도 풍성하고 다양한 의사표현이 가능할진대 그 어휘라는 것의 절반은 한자이니 한자를 버릴 수도 없는 이유다.

이제 한자는, 온전한 우리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말이 아닌 것도 아니어서 그 입지가 매우 어정쩡하다. 그러나 전 국민의 97% 이상, 신생아의 85%가 아직도 한자로 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 한자를 버릴 수 없다는 방증이다.
'전 국민의 97%ᆢ' 할 때 그 국민(國民)이라는 어휘를 우리말이라 할 텐가 우리말이 아니라 할 텐가? 적어도 한자로 된 어휘 자체만은 우리말이어야 할 것 아닌가.
한자는 이미 우리말이라는 얘기다.

한자 大韓檢定(株)를 읽을 수 없는 신문맹인의 출현 소식에, 아들에게 한자 공부에 관심 좀 가지라는 잔소리만 잔뜩 늘어 놓았다.
(2024. 9. 17 夏夕날 박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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