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후 유교문화 박물관에 모여 관람을 마치고 1기,2기 조사원은 월영교로
3기 조사원은 도산서원을 관람 한단다
일단 유교문화 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유교박물관은
유교는 중국의 공자가 창시한 인문 중심의 학문이고 그 학문을 조선시대에서 통치이념으로 삼았다고 한다.
고대의 유교가 한국 일본 중국에 미치는 영향과 인문중심의 종교 철학에 대한 문화를 모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서 의 역활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 국학진흥원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사라져 가는 유교의 정신 문화를
계승하기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 전시된 유교문화를 발전 계승시키기위한 노력 뿐아니라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전시체험관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인문정신연수원을 운영하기도 하여 어린 학생들과 함께 관람을 하면서
우리조상들의 삶과 인문 철학과 종교를 함께 체험할 수있는 공간이라 생각 한다.
유교문화 박물관을 관람 하고 도산서원으로
도산서원은 안동호 축조 당시 수몰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존가치를 생각하여 안동시민들의 서명과 유림들의 만류로
다행히도 수몰이 되지 않았지만 지대가 낮아 침수를 우려하여
지반을 높이는 성토사업을 통하여
지금의 도산서원이 유지 되었다고 한다.
도산 서원앞에 있는 크다란 나무가 4개의 나무가 심어 진듯 하지만 흙을 파고 들여다 보면 한뿌리에서 나온 줄기라고 한다. 그 만큼 많을 흙으로 수몰이 되지 않도록 땅을 돋우고 지반 자체를 높여 지금의 상태라고 한다.
퇴계이황 선생님이 공부하던 자리에 서당을 짓고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만든곳이 도산서당이고
도산서당 옆에는 학생들이 기숙을 하던 기숙사가 있었단다.
도산서당보다는 너 좋은 명당에 자리한 기숙사는 어린 학생들이 이곳에서 수학하여
나랏일에 중용되길 비는 마음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이 후학을 가르키기 위해 지은 곳이 도산 서당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후학을 가르킨다기 보다는
함께 수학하기 위해 만든 곳이 도산서당으로 퇴계이황 선생님은 제자에게 반말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산서당의 현판은 퇴계 이황 선생님이 직접 쓰신 도산서당글씨를 현판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 현판의 글씨에는 새가 두마리 있다고 한다.
새가 날개 짓하는 모습은 학습을 하기 위한 새들의 모습을 글씨체에 삽입을 하였다 하고
퇴계 이황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 그곳을 도산서원으로 만들어 후학들이
퇴계이황 선생님같이 학업을 하고 후학을 기르던 곳으로 서원으로 만들어 졌다 하며,
진도문 뒤로 광명실과 도산서원이 있는데 도산서원의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로 현판을 만들었다 한다.
광명실의 글씨는 퇴계 이황선생님이 쓰신 글자로 다른곳에 있었지만 나중에 광명실을 현판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당대의 최고 학자인 퇴계 이황선생님이 계시던 도산서원의 현판을 만들기 위해
많은 문인들에게 현판의 글씨를 부탁하였으나 모두 고사 하는 지라 임금이 한석봉에게 글씨를 부탁 하는데
처음 부터 도산서원이라 하면 애초에 글씨를 쓰지 못한다고 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한석봉을 불러 도산서원의 원자부터 불러주며 글씨를 쓰게 하였는데
원자 서자 산자를 쓰고 난 다음 그만 낙심하여 못쓴다하여 어르고 달래 집에서 도자를 쓰게 하였단다
그래서 쓰게된 현판이 한석봉선생님이 쓴 도산서원이란 글씨의 현판이 지금의 도산서원에 걸려 있다더라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도산서당과 도산서원 유교학문을 학습하고 공부하던 우리의 문화 유산들이
자랑 스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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