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아카시아 껌》
☆다들 그렇게 살고 있을까?

오늘이 벌써 5월 1일.
봄이 어김없이 다가오더니 어느새 그 봄도 지나고 초여름이 가까워져 온 산천에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고 있다.//

봄을 알리는 진달래 개나리와 함께 초여름을 알리는 전령사는 단연 아카시아 꽃이다.
고향 산천에 흐드러지게 아카시아 꽃이 필 때면 아카시아향이 온 산천을 진동한다.
이렇듯 아카시아는 진달래와 함께 아련한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의 꽃이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양희은 씨가 지나는 말로 재미있는 얘기를 하였다.
미국에 사는 자기 친구가 엄마가 보고싶고 한국이 그리울 때면 아카시아 꽃 향이 나는 아카시아 껌을 한입 가득 씹는다는 얘기를 하였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아카시아 꽃이 없다고 한다. 양희은 씨 친구는 아카시아 껌에서 나는 아카시아 향을 맡으면, 향수병이 조금은 낫는다고 한단다.
그래서 한국 들어갔다가 미국으로 오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아카시아 껌을 잔뜩 사다 두고 향수병(鄕愁病)을 다스리는 약용으로 쓴다는 얘기를 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옥수수 식빵을 좋아한다. 유년시절 급식으로 한개씩 나눠주던 옥수수빵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어린 시절 시골의 국민학교에서는 학교 한켠의 급식소에서 옥수수 가루로 쪄서 네모난 노란 옥수수빵을 만들어 한개씩 나눠주었다.
내 기억에는 통틀어 단 몇 번 한개씩 감질나게 받아먹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선생님 아들인 친구와, 소사 아저씨 아들인 또 다른 친구, 그리고 아버지가 면장이었던 친구는 늘 옥수수빵을 먹고 있었으니 그것이 요즘 말하는 힘 있고 빽 있는 집 아들의 아빠 찬스였던가 싶다.

아빠찬스도 그 무엇도 없었던 빈농의 막내아들 나는 내 몫의 옥수수빵조차도 제대로 받아 먹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들 손에 쥐어져 있던 그 옥수수빵이 하늘에서 떨어졌겠나?
골고루 나뉘줘야 할 옥수수빵이 아빠찬스 그 아이들 손에 넘치도록 쥐어졌을 것이다.

얼마 전 아내와, 예전 급식으로 나눠줬던 그 옥수수빵 얘기를 하다가 기가 막히는 엄마 찬스 얘기를 들었다.
어린 아내의 엄마, 지금 나의 장모님의 친구분이 아내의 담임 선생님이었는데 아내가 학교 마치고 집으로 갈 때면 으레 옥수수빵 몇 개가 손에 쥐어졌다고 한다. 아내는 옥수수빵을 넘치도록 먹었다는 남의 나라 얘기를 하였다.

아내가 가져갔던 그 옥수수빵은 나의 옥수수빵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부족했던 유년의 기억 속 옥수수빵은 늘 나를 허기지게 하였다. 단 몇 번 얻어먹었던 그 노란 옥수수빵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조금은 거칠거칠한 식감의 네모난 노란 옥수수빵. 나는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가끔 빵집에 들러 예전 그 옥수수빵과 비슷한 빵을 찾곤 한다.

내가 빵집에 들러 예전 옥수수빵을 찾는 그것은 부족하기만 했던 허기진 내 유년의 기억을 스스로 달래려는 위로일 것이다.
나의 옥수수빵을 아빠 찬스 엄마 찬스로 친구들에게 빼앗겼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니 친구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던 그 옥수수빵이 나의 것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안다.
그래서 나의 허기진 기억이 더 또렷이 되살아나는 것일까?

미국에서 한국이 그리워 아카시아 껌을 한입 가득 씹는다는 양희은씨의 친구분이나, 유년의 부족했던 옥수수빵의 기억을 달래느라 빵집에서 노란 옥수수빵을 찾는 나의 가여운 모습 모두가 사람 사는 모습일 것이다.
예전 일을 다꾸 되뇌는 것은 늙고 있다는 것이라는데ᆢ
다들 그렇게 살고 있을까?
(220526 一測 박종판)

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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