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묵집에서 / 장석남

묵을 드시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
묵집의 표정들은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나는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
서늘함에서
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씁쓸한 뒷맛에서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사랑은 늘 이보다 더 조심스럽지만
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
상 위에 미끄러져 깨져버린 묵에서도 그만
지난 어느 사랑의 눈빛을 본다오
묵집의 표정은 그리하여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 ㅇ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
묵과 사랑은 얼핏 매치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들이란 각자 독특한 괴물이라서
하나의 사물을 보고 기이한 발상을 한다
시란 것이 물에 물탄 듯 그저 그런 글이라면
읽는 자의 입장에선 재미가 없고
짧은 산문 하나를 읽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ㅇ 묵집의 표정들은 무섭도록 조용하다
호젓하다는 건 무섭도록 조용함을 말합니다
묵은
조금 서늘하고
애인의 살과 같이 매끈하고
사랑 뒤의 떫고 씁슬한 뒷맛이 있고
묵이 잘리듯 사랑이 깨어질까 아슬아슬하고~~
오늘 상 위에 떨어져 깨져버린 묵에서
파산된 지난 어느 사랑이 떠오른다
아슬아슬 묵을 먹는 표정들 호젓하다
진지하게 묵을 집는 표정들이
사랑을 다루듯 겁나게 진지하고 조용하다
묵과 사랑을 대비시킨 시입니다
묵 한 사발 드시면서
깨져버린 지난 사랑을 되새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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