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안부 / 황지우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어머님 문부터 열어본다
어렸을 적에도 눈뜨자마자
엄니 코에 귀를 대보고 안도하곤 했었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침마다 살며시 열어보는 문
이 조그마한 문지방에서
사랑은 도대체 어디까지 필사적인가?
당신은 똥싼 옷을 서랍장에 숨겨 놓고
자신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생을 부끄러워하고 계셨다.
나를 이 세상에 밀어놓은 당신의 밑을
샤워기로 뿌려 씻긴 다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겨드리니까
웬 꼬마 계집아이가 콧물 흘리며
얌전하게 보료 위에 앉아 계신다
그 가벼움에 대해선 우리 말하지 말자
♤ ㅇ 아마도 어머니께서 치매를 앓는 듯해요
황지우 시인은 남자이고
치매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듯하고
아직 반쯤은 제 정신이 남아 있을까
똥을 쌌으면 빨랫감인데 서랍장에 숨기시고
빨리 죽지 않는 스스로를 원망합니다
나를 세상에 내놓은 문, 거웃도 씻겨드리고
머리카락도 빗겨드리니 해맑은 소녀 같네요
마지막의 가벼움은 어떤 것일까요?
퀴퀴한 냄새를 샤워로 날려보낸 상쾌함
해맑아 보이는 어머님을 보는 안도감인가요
반쯤 이상 정신이 외출해버린 텅 비어지는
어머니의 머릿 속 가벼움일까요?
늙어 쭈그리고 앉으면 누구나 한줌입니다
점점 가벼워질 겁니다
정신이 멀쩡한 어떤 이는 암으로 죽고
육신이 멀쩡한 어떤 이는 정신이 외출해 죽으니
죽음의 과정이 다 다릅니다
다만, 스스로 죽음을 완성하긴 어렵죠
자식 신세 병원 신세에 별별 꼬라지 다 보이며
우리 죽음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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