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지기 고교 친구들이랑 충주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천 장호원에서 문경을 가려면 충주를 거쳐야 하는 덕분에 몇번 충주를 지나쳐 다닌적은 있지만

충주를 들러 볼 기회가 없었던터라 이번 기회에 충주 중앙탑과 탄금대를 둘러보며 역사와 문화를 느꼈다


중앙탑은

중앙탑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설화 가운데 통일신라 원성왕(재위 785∼798)과 관련된 설화는 탑의 건립시기와도 관련된다.

내용은 원성왕 때 신라 국토의 중앙 지점을 알아보기 위해 국토의 남북 끝 지점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보폭을 가진 잘 걷는 사람을 정하여 출발시켰더니

항상 이곳에서 만났기에 이곳에 탑을 세우고 중앙임을 표시했다고 한다.

중앙탑면에 있는 지명 중 ‘안반내’라는 지명이 있는데 여기서 반내[]라고 하는 것은 남북 끝에서 반이되는 내라고 해서

 반내라고 했으며 본래는 ‘한반내’였으며 이는 한국의 반, 곧 중앙을 뜻하는 것이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1916년도의 조사에 의하면, 기단부의 일부가 파손되어 점차 기울어지고 있으며, 심할 경우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하여

다음해에 이 석탑에 대한 전면적인 해체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해체 도중 탑신부와 기단부에서 유물이 발견되어 현장에서 수습되었다.

탑신부의 제6층 탑신에서 기록이 있는 서류편()과 동경() 2점, 목제칠합(), 은제사리합() 등이 나오고,

기단부에서는 청동제 뚜껑 있는 합[] 등이 나왔다.

그리고 탑신부에서 발견된 은제사리합 안에는 유리로 만든 사리병()이 있고,

그 주변에 몇 개의 사리가 흩어져 있었으며 사리병 안에도 몇 개의 사리가 들어 있었다 한다.

이상의 유물들은 모두 같은 장소에서 출현된 것이나 그 조성연대에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동경 2점은 고려시대의 조성품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이 석탑은 창건 이후 고려시대에 이르러 재차 사리장치의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 석탑은 탑평리의 한강 중류 연안 폐사지의 높은 대지에 잘 보존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忠州塔坪里七層石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탑평리 중앙탑에는 조각공원과 충주 박물관이 있고 워낙이 지리적인 기운이 세고 좋은 명당이여서인지 관내 판검사나

관리들이 취임을 하면 가장 먼저 찾아 보는곳이라고도 하고 현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이곳에서 기운을 받아 UN 사무총장이 되었다고 들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웠는데 예전 충주에는 국지의 화학 비료공장이 있었고 그곳을 드나더는 슈퍼바이저들이 외국인들이라

그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하다보니 영어를 익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앙탑공원 중앙 대로 충주박물관이 우측에 보인다

▲ 중앙탑 조각공원의 조형물

▲ 중앙탑 조각공원의 조형물

▲ 중앙탑 조각공원의 조형물

▲ 중앙탑 조각공원의 조형물

▲ 중앙탑에서본 남한강

▲ 멀리 중앙탑(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이 보인다

▲ 중앙탑에서본 남한강

                     ▲ 중앙탑에서본 남한강

▲ 중앙탑 조각공원의 조형물

▲ 중앙탑에서본 남한강

▲ 중앙탑 조각공원의 조형물 멀리 충주 박물관이 보인다

▲술을 빚는 장치라고 한다 이곳은 술 박물관

▲ 멀리 중앙탑(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이 보인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이곳의 정기를 받으려면 탑돌이를 해야 한다나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에서본 공원 풍경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에서본 공원 풍경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에서본 공원 풍경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이곳의 정기를 받으려면 탑돌이를 해야 한다나-탑돌이 풍경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이곳의 정기를 받으려면 탑돌이를 해야 한다나-탑돌이 풍경

▲이곳은 탄금대 노래비

▲탄금대 충혼탑

▲탄금대 충혼탑

▲탄금대 충혼탑

▲탄금대 솟대





                                    ▲ 탄금대에서 본 남한강

                                                               ▲ 탄금대

탄금대는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7월 9일 명승 제42호로 변경되었다. 탄금대는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야산인데, 기암절벽을 휘감아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탄금대란 신라 진흥왕 때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하나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 때의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살게 하고는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계고()·만덕()을 뽑아 보내 악()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한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아 풍치를 즐기며 커다란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탄금대라 불렀다. 칠곡리(지금의 칠금동), 금뇌리(지금의 금능리), 청금리(지금의 청금정) 등의 마을 명칭은 지금까지 전한다.

탄금대는 또 임진왜란 때 무장 신립()이 8,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西]의 군대를 맞아 격전을 치른 전적지이기도 하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의 열두대라고 하는 절벽은 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신립은 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이곳에는 신립의 충의심을 기리는 탄금대비를 비롯하여 신립장군순절비, 조웅장군기적비,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탄금정, 궁도장, 대흥사 등과 조각공원 및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충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탄금대 [彈琴臺]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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