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도여행 2일차 저녁 식사로 꼬치구이를 먹었다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를 꼬치로 끼워 구워 양념소스와 같이 먹는데

맥주와 고기는 무한리필이다 하지만 맥주는 2~3병 정도 이고 고기는 많으나 다 먹질 못한다 술과 함께 꼬치구이를 먹고 난후

마지막 관광 코스인 불야성으로 향했다 불야성이란 불빛으로 거리를 수놓아 휘황 찬란하게 장식을 해 놓은 거리로

이곳의 특색은 인어 분장을 한 잠수사 여자가 물속에서 묘기를 부리며 춤을 추는 공연을 하는데 이것 말고는 큰 볼 거리는 없다

아버지는 늘 인색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버지의 통장"
어릴 때부터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친구들은 용돈을 넉넉히 받았다.
새 운동화, 최신 휴대폰, 맛있는 음식까지.
하지만 나는 항상 부족했다.
“아버지, 용돈 좀 더 주시면 안 돼요?”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면,
아버지는 늘 같은 대답이었다.
“필요한 만큼이면 충분하다.”
그 말이 너무 싫었다.
필요한 만큼?
그 ‘필요’라는 기준은
항상 아버지 마음대로였다.
나는 점점 입을 닫았다.
그리고 마음도 닫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친구들은 부모님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냥… 멀찍이 서 있었다.
아버지는 꽃다발 하나 없이
그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수고했다.”
그게 다였다.
나는 그날,
아버지를 완전히 포기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다.
직장도 생기고,
나름대로 살 만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연락은
거의 끊긴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왔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후,
나는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게 되었다.
작고 오래된 집.
가구도, 물건도
모두 세월에 닳아 있었다.
“정말 이렇게 살았던 거야…?”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그때,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통장 하나를 발견했다.
아버지의 통장이었다.
표지는 헤져 있었고,
종이는 누렇게 변해 있었다.
그냥 평범한 통장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나는 점점 숨이 막혀왔다.
페이지마다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날짜와 함께.
“2003년 3월 5일
아들 학원비 입금”
“2007년 9월 12일
아들 운동화 구입”
“2010년 6월 20일
수학여행 용돈”
“2013년 11월 3일
아들 감기약”
그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내 인생이었다.
내가 기억조차 못 하는 순간들까지
아버지는 모두 적어두고 있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에는
유난히 또박또박한 글씨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늘도 아들에게 줄 돈을 남겼다.”
“나보다 잘 살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버지가 인색했던 게 아니라,
아버지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고 있었던 거였다.
자신은 쓰지 않고,
나를 위해 남기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울었다.
아이처럼.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목이 메여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돈을 쓸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아버지가 바라던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버지가 아직 계신다면…
지금이라도 한 번 더
말해보세요.
“고맙습니다.”
그 말은
생각보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떠오르는 사람은
댓글에 “아버지”라고 남겨주세요.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꼭 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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