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의 딸)
기계 가공업을 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나와 가까운 동네에 살아서
시간이 나면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
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10명의 친구가
부부 모임을 같이 하지만 동종업에 있는
나와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자주 보는 편이다.
이 친구는 속이 상할 때만 술자리를 만들어
가까이 사는 친구들을 부른다.
가공업이 부진한 터에 거래처의 연쇄 부도로
받을 돈 못 받아 생활비도 못 주고 있는데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전교 1-2등을 하는
딸이 학원을 보내 달라고 해도 보낼 수 없는 처지다.
가족들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줄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을
안주 삼아 늘 풀어 댄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이려는가.
나도 오랫동안 침체기에 살았고
가족들에게 제대로 해준 게 없어
친구의 말을 들을 때면 늘 가슴 아프다.
“가족들에게 지금 처한 현실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나?” 물으면
“생활비를 못 주는 상황인데 무슨 변명을 하겠나?” 답한다.
딸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아버지의 사업이 엉망이 되었지만
가족들에게 가장으로서 고충도 표현하길 권했는데
이 친구의 과묵한 성격으로 한번은 딸에게 손찌검까지 했나 보다.
학원을 한 번도 다니지 않은 딸은
서울대 농업 생명과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동문회와 동기들이 격려금을 주고 칭찬과 축하를 할 무렵에도
친구의 얼굴은 늘 어둡다.
좋은 일인데 우거지상으로 다니는 친구에게 핀잔을 줬더니
딸이 학원에 다녔으면 더 좋은 과에 입학했을 텐데
아버지에게 원망하고 사는 딸은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대 4년간 성적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로
대학 생활을 마친 딸은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당당히 취업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2016년 8월
친구는 갑자기 췌장암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나는 친구의 죽음으로 3일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빈소를 지켰다.
장례 기간에 수많은 동기가 다녀가면서
제단(祭壇)에 담배를 피워 올리는 사람도 있고
소주잔을 올려놓고 흐느끼는 친구들이 있어 마음이 더 아파진다..
그런데
이틀간 장례식장에서 있으면서 특이한 광경을 본다.
친구의 슬하에 남매가 있어,
큰아이가 딸이고 작은아이가 아들인데
슬퍼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서울에서 딸의 친구들이 많이 왔는데
철이 없는 나이라 하지만 장례식에서 결혼식 하객처럼
깔깔웃는 친구들도 보이고 마주 앉은 딸도 같이 웃는다.
보는 순간에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지만
엄숙한 내 친구의 장례식을 내가 망칠 수 없는 노릇.
곰곰이 생각하니
내 친구는 죽을 때까지 딸에게 위로나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고 갔나 보다.
장례식 마지막 늦은 밤에 찾아오는 조문객도 없어
친구의 영정이 있는 제단으로 남매를 불러 앉히고
지금까지 아버지와 있었던 이야기를 다 들려주었다.
내가 말하는 내용이 전부 처음 듣는 내용인가 보다.
몇 분도 안 되어 남매들은 울기 시작했다.
고단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
지금은 알아주지 않는 대구공고지만
한때는 지금의 과학고 못지않은 학교였다.
공부를 잘해도 너무 가난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직업전선으로 뛰어들어 아등바등 살다가 간 친구가 아니던가.
그렇게 원하던 학원 한번 못 보낸 아버지의 심정을
그대로 전하는 내 마음에도 큰 아픔으로 온다.
친구는 고인이 되었지만, 제수씨는 우리 모임에
지금도 참석하여 근황(近況)을 듣게 된다.
그 장례식에서 내 말은 들은 딸은 퇴사하고
경희대 의대에 편입하여 지금은 수련의 과정에 있다고 한다.
아들은 항공대 기계과를 졸업해서 대기업에 다니는 거로 알고 있다.
친구의 딸은 그 뒤로 만난 적은 없지만
딸은 아버지에 대한 오해(誤解)를 다 푼 게 틀림없다.
승규야! 두 다리 쭉 벋고 영면(永眠)해라.
언제가 만나면 신나게 회포 한번 풀어 보자.
이 글은 2024년에 페이스 북에 올린 글 입니다.
8월이 오는 이맘때 친구가 생각이 나서 다시 올려 봅니다.
기계 가공업을 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나와 가까운 동네에 살아서
시간이 나면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
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10명의 친구가
부부 모임을 같이 하지만 동종업에 있는
나와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자주 보는 편이다.
이 친구는 속이 상할 때만 술자리를 만들어
가까이 사는 친구들을 부른다.
가공업이 부진한 터에 거래처의 연쇄 부도로
받을 돈 못 받아 생활비도 못 주고 있는데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전교 1-2등을 하는
딸이 학원을 보내 달라고 해도 보낼 수 없는 처지다.
가족들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줄 수 없는 아버지의 입장을
안주 삼아 늘 풀어 댄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이려는가.
나도 오랫동안 침체기에 살았고
가족들에게 제대로 해준 게 없어
친구의 말을 들을 때면 늘 가슴 아프다.
“가족들에게 지금 처한 현실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나?” 물으면
“생활비를 못 주는 상황인데 무슨 변명을 하겠나?” 답한다.
딸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아버지의 사업이 엉망이 되었지만
가족들에게 가장으로서 고충도 표현하길 권했는데
이 친구의 과묵한 성격으로 한번은 딸에게 손찌검까지 했나 보다.
학원을 한 번도 다니지 않은 딸은
서울대 농업 생명과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동문회와 동기들이 격려금을 주고 칭찬과 축하를 할 무렵에도
친구의 얼굴은 늘 어둡다.
좋은 일인데 우거지상으로 다니는 친구에게 핀잔을 줬더니
딸이 학원에 다녔으면 더 좋은 과에 입학했을 텐데
아버지에게 원망하고 사는 딸은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대 4년간 성적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로
대학 생활을 마친 딸은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당당히 취업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2016년 8월
친구는 갑자기 췌장암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나는 친구의 죽음으로 3일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빈소를 지켰다.
장례 기간에 수많은 동기가 다녀가면서
제단(祭壇)에 담배를 피워 올리는 사람도 있고
소주잔을 올려놓고 흐느끼는 친구들이 있어 마음이 더 아파진다..
그런데
이틀간 장례식장에서 있으면서 특이한 광경을 본다.
친구의 슬하에 남매가 있어,
큰아이가 딸이고 작은아이가 아들인데
슬퍼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서울에서 딸의 친구들이 많이 왔는데
철이 없는 나이라 하지만 장례식에서 결혼식 하객처럼
깔깔웃는 친구들도 보이고 마주 앉은 딸도 같이 웃는다.
보는 순간에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지만
엄숙한 내 친구의 장례식을 내가 망칠 수 없는 노릇.
곰곰이 생각하니
내 친구는 죽을 때까지 딸에게 위로나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고 갔나 보다.
장례식 마지막 늦은 밤에 찾아오는 조문객도 없어
친구의 영정이 있는 제단으로 남매를 불러 앉히고
지금까지 아버지와 있었던 이야기를 다 들려주었다.
내가 말하는 내용이 전부 처음 듣는 내용인가 보다.
몇 분도 안 되어 남매들은 울기 시작했다.
고단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
지금은 알아주지 않는 대구공고지만
한때는 지금의 과학고 못지않은 학교였다.
공부를 잘해도 너무 가난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직업전선으로 뛰어들어 아등바등 살다가 간 친구가 아니던가.
그렇게 원하던 학원 한번 못 보낸 아버지의 심정을
그대로 전하는 내 마음에도 큰 아픔으로 온다.
친구는 고인이 되었지만, 제수씨는 우리 모임에
지금도 참석하여 근황(近況)을 듣게 된다.
그 장례식에서 내 말은 들은 딸은 퇴사하고
경희대 의대에 편입하여 지금은 수련의 과정에 있다고 한다.
아들은 항공대 기계과를 졸업해서 대기업에 다니는 거로 알고 있다.
친구의 딸은 그 뒤로 만난 적은 없지만
딸은 아버지에 대한 오해(誤解)를 다 푼 게 틀림없다.
승규야! 두 다리 쭉 벋고 영면(永眠)해라.
언제가 만나면 신나게 회포 한번 풀어 보자.
이 글은 2024년에 페이스 북에 올린 글 입니다.
8월이 오는 이맘때 친구가 생각이 나서 다시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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