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대)
서울에서 휴가내고 내려온 딸들이
지난주까지 Wife와 함께
큰 처형 댁 과수원 일을 도운다고 다녔다.
살구, 자두, 복숭아가 한창 출하되는 철이라
일손이 달리는 친정 식구들을 돕기 위해
Wife가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아이들의
외삼촌 내외, 이모 부부와 점심상을 같이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내가 셋이나 되는 자식들에게
예술을 가르치며
어찌어찌 살아왔다는 걸 아는 큰동서가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한다.
“야, 너희 아버지 등골 빠지겠다.”
그러자 막내딸이 한술 더 뜬다.
“저희 아빠한테 큰 빨대 꽂고 살아요.”
자리에는 웃음이 터졌다.
그날 저녁, 밥을 먹다가
낮에 있었던 그 얘기를 들었다.
나도 웃으며 말했다.
“이제 그 빨대 좀 빼라.”
물론 웃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식사를 마친 후,
혼자 화단에 내려가 담배를 피우며
그 말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서울에 보낸 자식 셋,
시각 디자인 한다고,
예술고, 예술대학 다녔고
이제는 각자의 재능을 믿고
열심히 살아가려 애쓰며 살고 있다.
겉으론 다 잘 사는 것 같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높은 물가에 허덕이고
적은 월급으로는
숨조차 쉬기 어렵다.
요즘 젊은 세대는
세상에 발 딛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취업도, 결혼도, 내 집 마련도,
모두가 멀고 버겁기만 하다.
오죽하면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부모 품 안에서라도 한시름 덜고 싶어
늦게까지 함께 사는 이들이 많다.
그게 철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만큼 팍팍해서다.
그러니 ‘빨대’라는 말,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살기 위해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꽂은 그 빨대를
나는 기꺼이 감당하고 살아야 한다.
물론, 내 어깨가 무겁고
등골이 휘는 날도 있지만
그 무게가 아이들의 삶을 버티게 한다면
기꺼이 견뎌볼 수 있다.
가끔은 생각한다.
언제쯤 그 빨대를 스스로 뺄 수 있을까.
아니, 빨대를 빼는 것이
꼭 독립의 완성이 아닐 수도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누군가의 마음에 기대야 할 때가 있고,
그 기대는 다정한 짐처럼
우리를 살아가게도 하니까.
오늘도 나는 묵묵히 산다.
빨대 몇 개 꽂힌 등짝을
조금 더 펴고,
조금 더 단단히 지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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