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母糷)》
☆엄마가 지어준 밥이 그립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우리 결혼하고 백일 만에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 돌이켜보면 참 일찍도 돌아가셨고 조실부모한 셈이다. 아직도 부모님 계시는 친구들도 있으니 살면서 가장 부러운 일이다.

아내가 들으면 서운할 말이겠지만, 불쑥 예전 엄마가 지어준 밥이 그립다. 이제 아내와 지낸 세월이 엄마와 지낸 시간보다 훨씬 많아졌어도, 모든 것이 아내가 해주는 것에 더 익숙해졌어도, 그리고 엄마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어도 불쑥불쑥 엄마가 지어준 밥이 그립다.

나는 유독, 손으로 넙떡넙떡 떼 넣은 밀가루 수제비를 좋아한다. 멸치 넣어 끓인 된장국이 좋다. 김치와 콩나물 듬뿍 넣어 끓인 갱시기를 좋아한다. 멸치만 넣고 담백하게 끓인 떡국이 좋다. 모두가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다. 이제는 아내가 그것들을 곧잘 만들어 준다.
그래도 그래도 엄마가 지어준 밥이 그립다. 다 챙겨주는 엄마 같은 아내가 되었어도 아내가 엄마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가수 유지나가 부른 '모란'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엄마가 그랬었지 나처럼 살지 말아라, 엄마가 그랬었지 남 하는 것 다 해봐라, 여자라 참지 마라ᆢ엄마 엄마 엄마 엄마, 부를수록 먹먹한 그 이름ᆢ다음 세상엔 그때는 엄마가 나의 딸로 태어나주세요."

애절한 노래의 제목이 '모란'이어서 모란꽃인 줄 알았더니 한자를 살펴보니 꽃 모란이 아니라 어미 모(母)에 밥 지을 란(糷)으로 ‘엄마가 지어 준 밥’이란 뜻이었다. 아는 것이 짧아 밥지을 란(糷)이란 한자도 처음 보지만, 엄마가 지어준 밥이라는 그 말에 마음 한켠이 적잖이 아리다.
엄마가 지어준 밥 모란(母糷)이 그립다.

한 세대가 바뀌어 이제 손녀가 자라고 있어도 엄마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애기가 된다더니 그게 그런 것인가 싶다.
엄마가 지어준 밥이 그립다.

국화 향 은은한 호젓한 가을밤에 곁에 계시지 않는 부모님이 그리워 홀로 마당을 서성인다.
송강 정철의 시조 한 구절을 읊조리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이제 우리가 그 부모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를 그리워할까?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기길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닮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2024. 11. 4 박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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