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400년 된 국우동 탱자나무]
☆오래된 착한 오지랖.

1990년 여름쯤의 일로 기억된다.
대구 북구 칠곡의 50사단 군부대 이전 공사가 진행되던 시기일 것이다.
50사단 이전지를 접하고 있는 국우동 취락지역의 현황 조사를 위한 측량작업을 나갔다. 아마 군부대 이전에 따른 보상 및 공사계획 등에 필요한 제반 현황 파악을 위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국우동이라는 곳이 지금은 칠곡 3지구 등의 개발로 주변이 번화하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읍내동에서 팔거천을 건너 좁은 마을길과 농로를 따라 한참 들어가야 하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측량 기계를 세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마을 언저리 산 밑으로 오래된 느티나무 고목도 마을의 당산나무 격으로 우뚝 서 있었고,온 동네가 얼기설기한 스레트 지붕들로 빼곡하여 번듯한 기와집 한 채 보이지 않아 시골의 여느 반촌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측량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 동네 뒤편 탱자나무 울타리 쪽에서 작업을 하였다. 가시에 몇 번 찔려 가면서 작업을 이어갔다
울타리 좁은 공간으로 어렵사리 비집고 들어 갈려는 참에 집뒤 언덕 위에 구불구불한 오래된 괴목이 몇 그루 나타났다.
밑둥치를 볼 때는 모과나무쯤으로 보였다. 좁은 틈을 빠져나와 올려다보니 탱자나무 가시 덤불과 얽혀 있었다. 무심히 그냥 지나치고 측량작업을 이어갔다.

그를 즈음 머릿속에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조금 전 그 탱자나무 덤불 쪽으로 다시 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금 전 모과나무로 보았던 그 고목이 탱자나무 덤불과 한 나무였다.
엄청나게 큰 탱자나무였던 것이다.
측량 가방에 가지고 다니는 미놀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고참 선배로부터 바쁜데 엉뚱한 짓 한다는 핀잔의 소리를 들어가며 혼자 분주하였다. 평소 내가 나무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고, 당시 조경기사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나무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그 탱자나무가 나의 눈에 보였을 것이다
무심히 지나치면 도저히 눈에 띄지 않을 위치에 있었고 밑둥치를 보면 영락없는 모과나무였다. 그런데 운명과도 같이 나의 눈에 띈 것이다.

측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사진 현상소에 가서 사진을 뽑아 보았더니 사진 속 나무는 영락없이 여전히 모과나무였다. 분명 탱자나무였는데ᆢ
하여 일요일에 혼자서 국우동으로 향하였다. 탱자나무임을 재 확인하고 돌아왔다.

이걸 어디에다 물어보고, 제보를 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막상 마땅치 않았다.
당시 팔공산의 자생 식물조사, 연구 관련하여 신문에 연재하셨고 식물도감 등으로 저명한 식물 학자인 경북대학교 양인석 교수님이 문득 떠 올랐다.

교수님께 알려 드리면 되겠다 생각하고 퇴근 무렵 경북대학교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세미나에 가고 안 계셨다.
사진을 전해달라 당부하고 전화번호를 남기고 돌아왔다. 이튿날 양인석 교수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만나자 하시어 다시 연구실로 갔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내일 바로 나무를 보러 갔으면 좋겠다 하셨다. 현장 방문과 간단한 실측 조사 등이 있었다. 교수님은 상당히 상기된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국우동에서 내가 보았던 그 탱자나무는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오늘에 보전되고 있다.
교수님께서 정리하여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청원하였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우선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하였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무의 보존 관리상태도 비교적 좋으니,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의지정을 다시 청원해 볼까 한다.

삼십여 년 전 내가 벌인 오래된 오지랖에 또 한 번의 새 오지랖을 벌여 볼까 하는 것이다.
강화도 등 두 세 곳의 국가 지정 탱자나무 천연 기념물이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국우동의 탱자나무가 되려, 크기나 관리 상태가 더 좋다고
하니 관계 기관에다 한번 다퉈 봐야 할 듯하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국우동 옆 도남동에 갔다가 국우동 탱자나무에 들렀다.
아내에게 이 옛 일을 얘기했더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씰데없는 짓은 혼자 하고 다닌다고 핀잔만 잔뜩 돌아왔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짓이지만 세상의 입장에서는 쓸모가 있는 일 일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착한 오지랖쯤일 것이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옛 기억을 떠 올리게 하는 탱자나무를 보면서 삼십 년 세월이 엊그제 같음을 실감하게 된다.
오래된 오지랖의 기억을 적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눈 한번 깜빡이면 또 그만큼의 옛 기억이 되겠지
생각하니 우리가 사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고 쓸모 있게 살아야 하리라. 우리가 살아있는 것도 오늘 이 순간이니까.
(2018. 11. 27 一測 박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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