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댁 국밥집 안방에서

 
 
과수댁 국밥집 안방에서

행님, 14년전 봄에 행님이 저하고 무내미골 홍야홍 과수댁에 뽕잎 따주러 갔던 날 기억하시는지요? 

내사마, 그날의 비밀을 형수님을 생각하여서 죽을 때 까정 숨가줄랐꼬 했지마는 

이제 늙어서 지난 추억만 먹고 사는 연세이니 죽기 전에 진실을 밝히고자 감히 필을 들었습니다. 

그해 봄날 행님이 뽕밭에서 뽕따다가 홍 과수댁이 집에서 점심 한다고 안 나타나자 

갑자기 지게에 뽕잎을 가득히 지고는 뛰뚱거리며 과수댁 집으로 급히 내려간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리고는 세 시간 동안이나 뭘 하셨는지 뽕밭으로 올라오지 않으셨습니다. 

이 조삿갓 혼자 땀흘리며 뽕잎따고 있을 때 행님은 홍야홍 과수댁 집에서 무슨 일 하신 것입니까? 

내려가실 때는 바람에 재미 나르듯이 쌩쌩허시던 분이 뽕밭으로 올라 올 때에는 

빈 지게도 무거운 듯이 비틀거리며 뽕밭으로 돌아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 때 행님이 누에 뽕 썰어준다고 늦었다 하셨는데 그걸 사실대로 믿어도 됩니까? 

그날은 홍야홍 과부도 뽕밭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뽕을 썬다꼬 안 나온 날 아니신지요? 

지게에 뽕지고 갔으면 곧바로 뽕 내려놓고 밭으로 올라와야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신지요? 

세상에! 독수공방을 하는 과부가 아이를 낳은 법도 있던가요? 

봄뽕으로 누에쳐서 읍내의 장터에 명주실을 팔러 나왔던 홍야홍 과수댁이 

갑자기 배가 아파서 국밥집 안방에서 건실한 사내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은 당체 무엇인지요? 

그리고 그 이후에 홍야홍 과수댁 아들이 중핵교에 들어가고 점점 덩치가 커지면서 

얼굴 모습이 영판 함박눈 행님을 닮아간다꼬 운천 시내에 소문이 짜-악 퍼진 일을 아시는지요? 

행님께서 저지른 모든 사실이 들통나기 전에 이제 진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밝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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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국밥이 땡깁니다. ㅎㅎㅎ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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