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장수 곽서방은 노름판에 잘못 끼어들어 돈을
모두 다 잃었다.
만회하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다니던
당나귀도 헐값에 넘겼고 그돈으로 또다시 골패를
잡았지만 그마저도 이경을 넘기지 못한채 빈손이
되었다.
가을 추수하면 받기로 하고 이집 저집에 깔아놓은
외상 소금값 치부책도 반값에 넘기고 또 붙었지만
새벽닭이 울때 다 털렸다.
막걸리 한 호리병을 나팔불고 노름판을 빠져나와
마당 구석에서 순식간에 날려버린 당나귀를 끌어
안고 어깨를 들썩였다.
장마 뒤끝이라 서산 위에 그믐달이 애처롭게 걸려
있었다.
소금창고를 짓고 객주를 차리려던 포부도 어여쁜
색시를 얻어서 장가가려던 바람도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이래 살아 뭐하나.’
솔밭 고개를 넘어 저수지에 다다라 짚신을 벗었고
그때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고개를 쳐들자 고요한
저수지에 파장이 일며 멱을 감던 여인이 수면위로
상반신을 드러냈다.
홑적삼이 물에 젖어 풍만한 젖가슴을 그대로 보여
줬고 여인이 물가로 걸어 나오자 허리춤이 보이고
은밀한 옥문에 속치마가 착 달라붙어 까만 숲속의
도끼자국까지 선명하다.
‘이것 저것 가릴게 뭐 있나. 조금후 저승갈 놈이...’
곽서방은 벌떡 일어나 여인을 안아 둑방에 눕혔고
거세게 저항하면, 주먹 한대로 기절시키려 했는데
의외로 여인은 두팔로 곽서방의 목을 감싸 안았다.
곽서방은 단추를 일일이 끄를 사이도 없이 조끼를
벗어버리고, 바지저고리를 모두 벗어 밤이슬 내린
풀밭 위에 깔았으며, 여인을 눕히자마자 집채만한
덩치로 발가벗긴 알몸의 여인을 덮쳤다.
천둥번개가 치고 한바탕 폭풍우가 휘몰아쳤으며
곽서방이 마침내 큰 숨을 토해내고 쓰러졌다.
울음소리에 곽서방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소복입은 여인이 울면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 어~, 낭자!”
저수지 한복판으로 가는 여인의 모습이, 날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 물속에서 그녀의 발목을
잡고 당기는 것처럼 재빨랐다.
여인은 그렇게 물속으로 사라졌지만 한맺힌 울음
소리는 계속 흘러나왔다.
곽서방은 스스로 목숨을 던지려 했던 계획을 접고
기이한 울음소리를 동헌에 알렸다.
이튿날, 고을 사또의 진두지휘 아래 다섯척 쪽배가
갈퀴로 저수지의 바닥을 훑자 큰 돌을 매단 처녀의
익사체가 올라왔다.
통상 익사체는 몸이 팅팅 붓는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그 처녀는 잠자듯이 온전했으며 둑방을 가득
메운 구경꾼 가운데 누군가 말했다.
“아니, 허대감댁 침모 삼월이가 아닌가.”
사또가 허대감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였으나
허대감은 단호하게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서 보름전에 삼월이가 안방의 장농을 뒤져서
패물을 훔쳐서 달아난 것밖에는 모른다고 하였다.
사또는 허대감댁 식솔들을 모두 마당에 모이도록
했으며 어렵잖게 집사를 잡아 동헌으로 데려갔다.
“네놈 조끼의 두 번째 단추가 색깔과 모양이 달라
원래 달렸던 단추는 어디 있는지 아는가? 삼월이
오른손에 꽉 쥐어 있어!”
사또의 벽력같은 꾸짖음에 집사는 사색이 되었고
곤장틀에 묶기도 전에 허물을 스스로 고백했으며
허대감 막내 아들이 혼례날을 받아놨는데 열여덟
삼월이의 배가 자꾸 불러오는게 사건의 단초였다.
결국 살인을 지시한 허대감의 막내아들과 하수인
집사는 감옥에 갇히고 삼월이는 양지바른 솔밭에
묻혔다.
곽서방은 사기도박꾼들에게 날렸던 재산을 모두
되찾고 사또로부터 넉넉하게 포상금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당나귀를 다시 찾아서 얼싸
안았으며, 그후 곽서방의 소금장사는 순풍에 돛을
달았다.
“서방님~ 올해에는 소금을 많이 사서 쌓아두시면
서해안에 비가 잦아서 가을이 되면 소금값이 많이
뛸 거예요.”
가끔가다 곽서방의 꿈에 삼월이가 나타나 앞일을
알려주는 덕분이다.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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