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마님 몸종이 된 거지소년

 
 

마님이 집으로 오다가 대문 옆 양지바른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서 저고리 옷섶을 뒤집어 이를 잡는

거지 여식애를 보았다.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거지 여식애가 마님을

흘낏 쳐다보고는 옷섶을 덮고서 얼굴을 무릎에다

파묻었다.

산발머리에다 얼굴은 덕지덕지 땟국이 흘렀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했다.

마님이 인자한 목소리로 우리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자 거지는 멈칫거리더니 마님을 따라 들어왔다.

거지 여식애는 마님이 시키는대로 우물가에 가서

세수를 하고 부엌에 차려준 밥상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단숨에 먹어치웠다.

밥상을 치우고 나서 거지 아이는 빗자루를 들고

드넓은 마당의 낙엽을 쓸기 시작했다.

마님이 왜 마당을 쓰느냐고 물으니 밥값을 하고

가겠다는 대답에 마님이 곰곰이 생각했다.

마님은 거지에게 추운 동짓달에 풍찬노숙하지

말고 우리 집에서 겨울을 지내라고 하였다.

거지 아이가 감격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잠시후 가마솥에 물을 끓여서 목욕을 시켰다.

마님은 거지 아이가 입었던 걸레같은 옷가지를

마당가에서 몽땅 태워서 없애버렸다.

그리고 장롱속에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시집간

딸애가 어릴 적에 입었던 치마저고리를 부엌에

넣어주었다.

바로 그때 부엌에서 거지 여식애가 마님을 불러

갔더니 거지는 계집애가 아니고 남자라고 했다.

마님은 깜짝놀라 아들이 어릴때 입던 옷을 찾아

부엌에 다시 넣어주었다.

옷을 갈아입고 방으로 들어온 거지를 본 마님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여 또 한번 놀랐다.

마님은 거지 녀석이 마대자루 아래를 터서 아랫

도리를 감쌌기에 치마를 입은 줄 알았다.

게다가 거지 녀석이 움츠렸던 몸을 똑바로 펴니

어린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마님이 거지 소년에게 지금 나이가 몇 살인지를

물어보자 열여섯 살이라고 대답했다.

마님은 여식애를 자신의 몸종으로 데리고 같이

있으려고 했는데 머슴애라서 무척 난감해졌다.

마님은 남편을 여읜지 20년 넘었고 1남 2녀를

키워서 좋은 혼처를 찾아 모두 출가시켰다.

자식을 출가시키고 몸종을 데리고 넓고 큰집을

지키며 혼자 살아온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몸종이 그만두고 떠나가서 다른 몸종을

구하려고 하는데, 거지가 머슴애라 난처하지만

하는 수 없었다.

거지 녀석이 살이 붙고 팔은 억세졌으며 밤마다

팔다리를 안마하던 여자 몸종 대신에 이 녀석이

안마를 하니 훨씬 더 시원해졌다.

마흔 일곱 마님은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으레껏

고쟁이 바람으로 보료에 누워있고, 녀석은 억센

손으로 안마를 하였다.

종아리부터 주무르던 손길이 차츰 차츰 올라가

허벅지까지 갔다가 마님이 몸을 엎드리면 안마

손길은 엉덩이까지 갔다.

소년의 안마 손길이 이곳 저곳을 거치자 마님은

숨이 점점 가빠지고 소년의 숨도 가빠졌다.

마님은 이제부터 소년을 더는 자신의 몸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한 사람의 사내로 여겼다.

소년은 동네 사람들 앞에선 마님의 친정 조카가

되어서 언제나 이모라고 불렀다.

- 옮긴글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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