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끼리 맺어진 사랑 이야기

 
 
원수끼리 맺어진 사랑 이야기

세조대왕이 보위에 오른 후 종실과 백관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고 축하를 받았으며 세조가

거나하게 취해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과인이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 지금 보위에

올라 경들과 술자리를 같이하며 실컷 즐기니

어찌 경행(慶幸)이 아니겠는가?”

백관들이 우러러 아뢰었다.

“전하의 덕은 후세에 법이 될 만하옵니다.”

세조가 물었다.

"나의 공덕은 어떠하오?”

“전하의 공덕은 주공(周公)에 비할만하니 너무

부끄러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찬양하자 세조는 크게 기뻐했고

이때 나이 겨우 10여세 된 공주 하나가 세조의

곁에 있다가 쏘아 붙였다.

“전하는 잔인하고 각박한 짓을 하였는데 무슨

공덕이 된다고 축하를 받습니까? 제 생각에는

공덕이 아니고 참덕( 德)으로 여겨집니다.”

세조는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너는 요물이로다. 참으로 나라를 망칠 년이니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

그리고는 공주를 당장 쫓아내버렸다.

공주가 기세를 잃고 문밖으로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뒤에 세조는 후회하고 공주를 다시 불러오려

했으나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세조는 부처를 숭상하고 또 산천에 기도하기를

좋아 하여서 두세 시자(侍者)를 거느리고 미복

차림으로 출행하였다.

이리저리 가다가 어느 한곳에 이르렀는데 바로

인적이 이르지 않는 심산벽지였다.

거기에 초가삼간 한 채가 있었는데 쑥대로 엮어

만든 사람밖에 한 여인이 절구질을 하고 있었다.

쑥대머리에 맨발이고 옷은 다 떨어진 누더기를

걸친 모습이 너무도 불쌍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니 바로 몇해 전에 쫓아낸

공주였으며, 세조가 속으로 반기고 불쌍해 하며

물었다.

“내 딸이 어찌하여 여기에서 고생을 하는가?”

이에 수레를 멈추고 앞으로 가서 손을 잡았으며

공주가 처다보니, 바로 부왕이었고 역시 반갑고

서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전하께서 어인 일로 여기를 오셨습니까?”

공주는 그동안에 겪은 고생한 일들을 자세하게

아뢰었으며 세조는 몹시 불쌍해 하며 물었다.

"너는 누구와 짝을 지어 살고 있느냐?”

“김도령이란 사람과 우연히 서로 만나서 그대로

부부를 맺고 삽니다.”

“김도령은 어디에 갔느냐?”

“나무하러 갔으니 저녁때 돌아올 것입니다.”

“내가 환궁한 뒤에 너의 부부를 데려갈 것이니

그리 알고 김도령에게 전하여라.”

“마땅히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세조는 이내 수레를 돌려 환궁했으며 김도령이

돌아오자 공주가 그 일을 말하였더니 김도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반겨하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불가한 일이오.”

그리고 그날 저녁에 가족을 데리고 다른 데로

옮겨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 후에 세조가 교마(轎馬)를 보냈는데 집이

텅빈 채 사람이 없었으며, 이 사실을 돌아와서

보고하자 세조는 후회하고 깊이 탄식하였다.

그 두 사람은 어디에 정착했는지 알 수 없었고

김도령은 절재공 김종서의 셋째 아들이었다.

계유년 화를 입을 때 망명도주해 산 속에 숨어

살다가 우연히 공주를 만나서 작배(作配)하게

된 것이었고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 옮겨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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