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퇴기 홍매의 마지막 유언

새우젓장수 고서방이 산허리 고갯길을 한걸음

두걸음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르고 있었다.

고갯마루 초가집 삽짝에서 내려다보던 홍매는

종종걸음으로 내려가서 새우젓 지게를 떠밀어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몸이 성치 않아서 두손으로 지팡이를 움켜쥔

채 한숨만 쉬었고 굽어진 고갯길에서 보이지

않던 새우젓 장수가 마침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손바닥 만한 마당에 새우젓 지게를 괴어 놓고

홍매가 떠온 냉수 한사발 얻어 마신 고서방이

쪽마루에 털썩 주저앉으며, 환한 웃음을 날려

인사를 대신한다.

“얼마 만인가. 열흘도 넘었제?”

“8일 만이라우”

새우젓 장수 고서방이 담뱃불을 붙이며 홍매를

쳐다보니 그녀 얼굴엔 주름살이 부쩍 늘어났고

허리는 더 굽었다.

새우젓장수 고서방과 늙은 퇴기 홍매는 쓰러져

가는 쪽마루에 걸터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요즘 대처엔 고약한 일이 터져 연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릅니다요.”

“그게 무슨 일이여?”

“사또 아들이 지애비 힘을 믿고 온갖 못된 짓을

하더니 이번에는 매사냥을 나갔다가 나물 캐러

산에 오른 양갓집 처녀를 겁탈했지 뭐예요.”

“그래서?”

“그녀는 소나무에 목을 매어….”

외딴집에 혼자 살고있는 홍매는 새우젓장수가

들려주는 얘기가 유일한 세상 소식이다.

이 집은 원래가 주막이었고 대처에서 이름깨나

날렸던 색줏집 기생인 홍매는 박가분 떡칠로도

얼굴의 잔주름을 감출 수 없었다.

여자 나이 서른이 넘자, 지금 살고 있는 무티재

고갯마루 외딴집에 주막을 차려 주모가 되었다.

그때부터 가끔식 들렸었던 젊은 새우젓 장수는

주막에서 막걸리를 사 마시는 손님이자 새우젓

파는 장사꾼이었다.

무티재 주막은 오가는 나그네들이 서로 술잔을

기울이고 국밥을 사 먹으면서 내는 웃음소리와

이바구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꽃다운 나이는 지났지만 홍매는 가끔씩 객방의

손님에게 몸도 팔았다.

젊을 때부터 몸을 함부러 썼음인지 세월이 흘러

나이가 불혹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홍매는 폭삭

늙어버렸다.

불을 밝히던 주막 등도 내리고 자기 몸뚱이 하나

챙기기도 힘들어졌다.

친정 쪽의 먼친척 조카를 양자로 들였더니 몸을

팔아 사두었던 피같은 논밭 야금야금 모두 팔아

치우고 3년째 소식조차 없다.

고서방이 보름만에 무티재를 넘다가 홍매 집에

들러자 안방에서 앓는 소리가 났으며 고서방의

손을 잡고 홍매가 입을 열었다.

“술 마신 남정네들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내 치마 벗길 궁리만 했는데, 자네 혼자만 나를

누님 대하듯 했네.”

홍매는 가쁜 숨을 몰아쉬곤 말을 이었다.

“늙고 병들자 모두가 외면했지만 자네는 나의

말벗이 되어주고, 비가 새는 지붕도 고쳐 주고

내려앉은 구들장도 고쳐주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자네도 이제 나이가…?”

“사십줄에 접어드니 무릎이 아파 이게 새우젓

장수 마지막 길입니다.”

“부엌의 아궁이 밑을 파서 자네가 가져가게.”

홍매의 손이 싸늘해졌다.

양지바른 곳에다 무덤을 쓰고 산을 내려오던

고서방이 홍매의 마지막 말이 생각나 되돌아

홍매네 집으로 가서 아궁이를 파보았다.

어른 주먹만한 금덩어리가 나왔으며 며칠후

무티재 아랫마을 천전골에 두개의 공사판이

동시에 벌어졌다.

석수와 마을 사람들이 동네 앞에 있는 개울에

돌다리를 놓고 솔밭 앞에 훈장 집이 딸려있는

아담한 서당을 짓는 것이다.

새우젓 장수 고서방이 돌다리를 놓는 곳에서

일손을 거들다가 어느새 서당을 짓는 곳에서

땀을 흘렸다.

동네 사람들이 돌다리 난간 기둥에 금덩어리

희사한 고서방의 이름을 따서, 고석봉교라고

음각하려고 하자, 고서방이 완강히 반대하여

그 뜻은 무산되었다.

- 옮겨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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