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수절 청상과부 취하기

 
 

고향을 떠나 어언 해가 바뀌고 다시 가을이 왔으나 방랑 생활에 익숙해진 삿갓은, 집에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떠돌기만 하다 보니

먹고 입는 것은 그런대로 해결이 되었지만 사람이 어디 먹고 입는 것만이 생활이 아니지 않는가?

그도 피끓는 청춘이라 때로는 인간의 본능인 성생활도 필요하건만, 아직까지 바람 한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꽃피고 새울거나 요즘처럼 쓸쓸한 가을날

낙옆이 떨어지고 비오며 가을바람 쓸쓸이 불거나 달밝고 외로운 밤이면 가슴속에는 꿈처럼 그리운 것이 바로 여자였도다.

그렇지만 삿갓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으며 때는 추석 명절이라 고향 생각과 아내 생각으로 삿갓의 마음이 싱숭생숭 하던 차에

오늘은 우연히 함흥땅 가까운 주막에서, 명절이라 길손도 없고 하인조차 없는 쓸쓸한 주막에 소복한  아낙이 수심 가득한 얼굴로 객을 맞이한다.

삿갓은 속으로 옳다구나 오늘은 여기서 남녀상렬지사 (男女相悅之詞)가 아닌 남여상열지애(男女相悅之愛)를 이루어 보리라 생각하고

삿갓이 하룻밤 묵어 가겠다고 청하자 명절이라서 아이들도 큰댁에 가고 심부름할 애들이 없으므로 딴집으로 가라고 하였다.

그런다고 한번 마음먹은 삿갓이 쉽게 물러 날리가 어디 있것소.

"다리도 아프고 허니 좀 쉬어라도 갑세다."

삿갓이 부득부득 마루에 털썩 올라앉으니 아낙은

더이상 뭐라 말도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가버린다.

삿갓은 속으로 어떡하면 여기에서 하룻밤 묵기도 하고, 오랫만에 여인네와 운우지정 육두질이라도 질펀하게 하고 갈꺼나 하고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때마침 여인이 부엌에서 나오자 능청스럽게 수작을 걸어본다

"아주머니, 추석이 언제입니까?" 일부러 모르는척 물어보니 "어머, 내일이 바로 추석이잔아 예" 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바라본다.

(어메 죽이는거이)

올커니 하고 잽싸게 쓸쓸한 나그네가 고향을 생각하는 당나라의 왕유(王維)의 시 한 수를 청승맞고 쓸쓸하게 한번 읊어본다.

독재이향위이객(獨在異鄕爲異客)하니,

매봉가절배사친(每逢佳節倍思親)이로구나.

홀로 타관 땅에 낯선 나그네가 되었으니

해마다 맞는 명절에 어버이 생각이 더욱 나는구나

"어머! 선비님, 아주 문장가시네요?" 하고 아낙은

대뜸 표정이 밝아진다

(옳타 이제 슬슬 사람을 알아보고 걸려드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매

"글쎄 올시다. 문장이면 뭐 합네까? 타관에서 식객 노릇이나 하는 주제에" 하고 곁눈질로 아낙 얼굴을 한번 힐끔 살핀 뒤에 신세한탄을 하니

"별스런 양반두 누가 명절에 객지밥 잡수라고 시켰나요. 부지런히 오늘이라도 고향을 찾아가면 되지" 하고 저녁거리 쌀을 씻으며 말을 받는다

"허-~ 강원도 영월땅을 이제사 갈 수 있겠소?" 하고 삿갓이 한숨을 휴~ 하고 길게 내쉬었다.

"보아하니 젊잖으신 분이라 제가 오늘은 돈을 안받고 하룻밤 재워드릴 테니 내일 아침 일찍 떠나셔야 해요." 하고 씻은 쌀 바가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음~ 됐다. 이 널찍한 집에서 저 여인네와 단둘이만 잔다?"고 생각하니 삿갓의 가슴은 벌써부터 방망이질을 한다.

아낙네가 맛있게 차려준 저녁상을 물리자 어느듯 밤이 되었고 저녁을 먹고나니 아낙네는 내실에 있었고 삿갓은 바로 옆방에 행장을 풀고 묵게 되었다.

삿갓은 아낙네와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낙은 과수댁이 된지 벌써 사오년이 되었으며,

아들 형제가 있는데 동네 서당에 보내 글도 가르키고 자기는 이렇게 주막을 하며 살아도 이를 악물고 수절해 온 것을 세세히 일러줘서 그 내력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삿갓은 슬슬 몸이 달아올라 어떻게든 작업을 시작하는데 아까 시조를 읊으니 알아 듣길래 글에 대한 얘기를 재미나게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삿갓은 시간을 오래 끌려고 자꾸 뜸을 드리는데 밤이 깊어져 아낙이 이제 그만 들어가 주무시라며 자기방에 들어가려고 하자 삿갓은 자기도 모르게 아낙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이 과객이 객고가 너무 커서 야기를 좀 더 하고싶다고 추근대기 시작하니 아낙은 수절하는 과부에게 무슨 얘길하자고 그러느냐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남아도처유미인(男兒到處有美人)이지만, 이제까지 방방곡곡을 다녀 봤어도 아주머니 만한 미인을 아직 보지를 못했습니다.

정 그렇게 뿌리치시면 제가 몸둘바를 모르겠다면서 내가 잘은 모르나 오늘밤 그대의 관상을 보니 나를 오늘밤 축객(逐客)을 해봤자

또 다른 못된 놈이 찾아와서 아주머니의 수절은 물론 목숨까지 부지 못할테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서 삿갓이 다른 주막으로 가겠다고 거짓을 꾸며 겁을 주었다.

그러자 여인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만 털썩 그자리에 주저 앉으며 자기와 얘기는 하지 않더라도 주무시다가 이따가 그놈이 오면 좀 지켜달라고 애원하였다.

여인의 말을 듣고 삿갓이 자기는 댁의 집이나 지키는 삽살개가 아니니 그러긴 싫다고 하면서 다른데로 가려고 하면서 금방 갈려는 테세를 보였다.

여인도 명절을 앞두고 사람 목숨까지 해치는 도둑이 다닌다는 소문을 들은지라 아이들도 큰댁에 보내고 혼자 있는 집에서 무슨 일을 당할까 은근히 걱정스런 모습으로 꼬리를 내리니

아낙은 완전히 삿갓의 수단에 걸려들었으며 한참을 손목을 잡고 이런저런 얘기에 되느니 안되느니 수절 과부를 이렇게 하면 되느냐는 둥 실갱이를 하다가 아낙은 자기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러니 삿갓은 옆방에 들어가서 행장을 다시 꾸리는척 부스럭 거리며 궁시렁 궁시렁 옆방 여인이 알아 들을동 말동 궁금하게 중얼거리자

안그래도 여인은 삿갓이 다른대로 갈까봐 조바심을 하는데 무어라 부스럭 거리며 중얼거리는 소리에 그만 무심코 삿갓에게

"여봐라, 그 손님 가시지 말라고 일러라." 하고 갑자기 연극을 한다.

"여봐라, 가지는 않을 테니 손님 자리도 그 방에 펴두라고 일러라." 하고 삿갓도 맞장구를 치니

"호호, 그 말은 난중지 난사라고 일러라."

"난중지 난사는 어렵지 않다고 일러라."

"그만 주무시라고 일러라."

"꿈이 뒤숭숭해서 못 잔다고 일러라."

이렇게 몇마디 말 장난을 하고난 후 삿갓은 시 한 수를 써서 종이를 방문 틈새로 슬그머니 들이밀었다.

객추소조몽불인(客秋蕭條夢不仁)

만천상월조오린(滿天霜月照吾隣)

나그네 베갯머리가 쓸쓸하니 꿈도 뒤숭숭하고 하늘에 가득한 가을달은 내 곁을 비추니 더욱 쓸쓸하구나.

록죽창송천고절(綠竹蒼松千古節)

홍도백이편시춘(紅桃白李片時春)

녹죽과 창송이야 천고에 변치않는 절개가 있다 하지만 홍도와 백리야 한때의 봄에 피고 지는게 아닌가.

소군옥골호지토(昭君玉骨胡地土)

귀비화용마의진(貴妃花容馬嵬塵)

왕소군의 옥골도 호지의 흙이 되었고 양귀비의 화용도 말발굽 아래 한갖 티끌이 되었네.

세간물리개여차(世間物理皆如此)

막석금소해녀신(莫惜今宵解汝身)

세상의 원리가 다 이런 것이거늘 오늘밤에 그대의 몸풀기를 너무 아까워 하지 마소.

삿갓도 엄청시리 엉큼한 구석이 있었으며 하기사 얼마나 사무치게 여인네의 살내음이 그리웠으면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이러 했을까?

"음~ 네가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그 글을 읽고도 배겨 내는가 보자." 하고 조금을 기다리니

"여봐라, 그 손님 이 방으로 들라 일러라." 하면서 드디어 여인이 항복을 하고 말았다.

끈질긴 유희와 거짓 협박으로 드디어 여인네의 허락이 떨어져서 안방으로 입성을 하고보니 아낙은 빙그레 미소를 짓고 다소 붉어진 얼굴로 삿갓을 맞이하곤

기왕에 오늘 댁과 정을 맺게 되었으니 두가지 간곡한 청이 있으니 꼭 들어달라고 하였다.

청이란 것인 즉슨 첫째, 오늘 이밤의 역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언제 어디서건 누구에게도 발설 하지 말것.

둘째, 남편의 산소가 건너마을 정진사란 놈이 상소를 맹글어 귀찮아서 정진사가 지관에게 지불했다는 돈까정 대신 물어주었는데도 파간다 파간다 하면서 몇해째 미루기만 하길래 답답해서

관가에 가서 처음에는 형방에게 부탁하고 그 다음엔 사또에게 진정을 했는데도 당장은 잡아오라 불호령을 하나 소식이 없으니 이를 잘 해결할 방도를 세워달라는 것이었다 .

삿갓이 여인의 말을 들어보니 첫번째 조건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나 두번째 상소는 송사라고는 해본적이 없고 타관을 떠도는 나그네 몸으로 어떻게 좋은 방법이 있겠소 하고 말하니

아까보니 선비님은 문장이 출중하시던데 이런 저의 억울한 사연을 글로 좀 잘 써서 사또께 낼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다면서 그 방도를 일러주길래 글에는 자신이 있는지라

내일 아침 길 떠나기 전까지 꼭 써드릴 테니 염려마시고 어서 잠자리에 들자고 채근을 하자 오늘은 자기 평생 처음으로 훼절(毁節)을 하는지라 목욕을 하고 술한잔 나눈후 운우지정을 나누자고 했다.

그래서 삿갓은 뒷간에 마련한 목간통에서 모처럼 만에 목욕도 깨끗이 하고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기분이 날아갈듯 상쾌하고 좋았다.

여인도 목욕을 한후 곱게 단장허고 갈비찜에 밥알이 동동뜨는 동동주를 정갈하게 차려서 술상을 들여와 아낙이 무릎을 꿇고 정답게 따라주는 술잔을 받고보니 꿈만 같았다.

오랬동안 살맛에 굵주렸던 피끓는 젊은 남녀가 한창 가슴부풀어 술까지 나누고 삿갓은 급한 김에 자리도 펴기전 옷을 모두 벗고 천둥번개를 한번 치러든 찰라.

"아~ 문좀 따주. 웬 주막이 이리 일찍 불을 끄고.." 하면서 누가 크게 소리친다.

올커니, 내심 삿갓은 무심코 자신이 한말이 귀신같이 맞아 떨어짐에 내심 쾌재를 부르며 말했다.

"저것 보시오.내가 떠났더라면 몸은 몸데로 버리고 죽임을 당할게 뻔 하잔소?"

"어머나! 아이쿠 무서버라."

삿갓의 품속에 파고 드는 아낙을 슬그머니 밀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태연히 툇마루로 나서서

"여보 과객, 내일이 명절이라 이집 주인들도 모두 큰댁에 가고 나 혼자서 일가집이라 집을 봐주러 와있으니 다른 주막으로 가보슈." 하고 무뚝뚝하게 쏴붙이니 과객들은 투덜거리며 사라졌다.

삿갓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선 태연하게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내실로 들어오자 아낙이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삿갓을 반겼다.

"어머, 어쩌면 그렇게 용감하셔요?"

다시 술잔이 오고간후 술이 거나해져 피곤한 모습의 삿갓을 본 여인이 그동안 소중하게 넣어 두었던 비단금침을 내려서 차근차근 펴기 시작했다.

삿갓이 "자, 이제 그만 불을 끕시다." 하면서 먼저 아랫목에 파고들며 은근한 웃음을 아낙에게 보내자

"아이참 어쩌나."

아낙도 더이상 미련을 둘수 없음에 불을 눌러 끄고는 옷을 벗기 시작했으며 누가 여인의 옷벗는 소리를 함박눈이 사각사각 내려 쌓이는 소리라 하였던가.

삿갓은 떨리는 가슴으로 여인의 옷벗는 소리를 들으며 여인을 기다렸고 해가 넘도록 여인을 품어보지 못했던 삿갓과 남편이 간후 수년간 수절해온 여인이

뜨겁게 달아 오를데로 달아 오른 두 남여의 몸이 서로 닿자 이는 마른 나무에 불이 붙듯 이불속은 갑자기 열풍이 휘몰아치고, 또 치고, 또 쳤다.

삿갓은 날이 새는 것이 너무 아쉬워 새벽녘에 또다시 여인의 몸을 더듬자 여인도 오랬만의 육두 맛에 아쉬워 은근히 기다리던 참에 코맹맹이 소리로 화답했다.

여인이 두 다리로 삿갓을 휘감아오니 또다시 한바탕 천둥번개와 함께 노도와 같은 광풍이 휘몰아치고 소나기가 거세게 몰아치니 사랑의 홍수가 넘쳐흘렀다.

그런 연후 여인이 정성껏 산해 진미로 차려온 아침상을 받고 난후 어젯밤에 약속한데로 글을 한 수 지어주면서 아마 이 글을 보면 사또도 마음이 달라질 것이라고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굴거굴거피척지항언(掘去掘去彼隻之恒言)이요

착래착래본수지례제(捉來捉來本守之例題)인데

금일명일(今日明日)하니 건곤부노월장재(乾坤不老月長在)하고

차경피경(此頃彼頃)하니 파간다 파간다 함은 저쪽의 늘 하는 말이요

잡아오라 잡아오라 함은 이 고을 군수의 의례하는 얘긴데 이렇게 오늘 내일 하고 미루기만 하나

천지는 늙지 않고 세월은 가기만 하나니, 이탈저탈 하는 사이에 쓸쓸한 강산은 어느덧 백년이 될 것이로다.

이 글을 받아들고 읽고난 여인은 아주 참 명문이라며 크게 흡족해 하면서 원래 제집은 과객이 묵어가는 집이니 저쪽 바깥채에서 며칠 묵으면서

이 송사의 하회나 보고 떠나가라 했으며, 이따 낮이 되어 자기 아들들이 돌아와서 이 글을 읽어보면 아주 감탄을 할 것이라며 무척 좋아라 하였다.

이에 삿갓은 속으론 너무 좋아하면서도 겉으로는 폐가 되어 죄송하다고 능청을 떨었으며 오전이 지나 큰집에 명절쇠로 갔던 아들들이 돌아오고

두어명 다른 과객들도 다시 더 들어오고 해서 자연히 삿갓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랑채에서 또다시 유숙하게 되었다.

다음날 열댓살 먹은 큰 아들을 앞세우고 관가를 찾아가 사또의 인척이라 졸개들을 속이고 직접 사또와 면담한 뒤에 삿갓이 써준 글을 보이면서 일이 원만히 해결되도록 눈물로 호소하니

사또가 글을 읽고 난후 참 제미있는 글이라고 하면서, 송사를 내일 당장 해결해 줄것이니 아무 염려말고 그것 보다 이 글을 쓴 사람을 나에게 좀 보내달라며 오히려 아낙에게 간청을 하였다.

아낙은 이 말에 혹시나 사또가 삿갓을 불러 무슨 나쁜 일을 저지를까봐 내심 걱정이 되어 그 사람을 사또께 보내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제발 그분이 나쁜 뜻으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오니 그분을 책망 하심은 제 입장이 아주 난처해 진다고 여쭈니 그런 걱정일랑 하덜덜 말어라 하시며

오랜만에 하도 재미있는 글을 봐서 이런 재사(才士)하고 이야기나 나누려고 하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믿고 분부대도 하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왔다고 하였다.

아낙을 안심시키고 돌려보낸 사또는 그간 자신이 명령한 일을 확인해보지 않은 것이 이런 실책이 생긴것이라고 생각하여 당장 형방을 불려 확인하기 시작하다.

"이놈 형방 듣거라! 조금전에 다녀간 아낙이 예전에 상소를 제기한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서 형방을 다그쳤다.

형방은 건너마을 정진사가 쓴 묘를 천장(遷葬)시켜 달라고 하여 사또의 명을 받은 즉시 정진사를 여러차례 잡으러 갔으나 그때마다 허탕치고 아직까지 미결인 채로 있다고 아뢰었다.

"허허, 그럴 수가 있느냐? 오늘 당장 정진사 놈을 잡아 대령하거라. 만일에 정진사가 없으면 그 아들놈이라도 잡아 대령하렸다. 그렇지 못하면 네놈이 경을 칠줄 알아라."

형방은 사또의 명령이 추상같으매 분부대로 바로 거행 하겠다고 불이나게 달려가 정진사를 잡아 대령하여 곤장을 몇대 얻어맞은 정진사가 이실직고 하였다.

이튿날 즉시 천장하고 벌금 이백냥까지 물려서 여인에게 보내주자 삼년동안 빛을 못보던 일이 말끔하게 해결되고 기대하지 않았던 돈까지 되찾았다.

기쁨에 넘친 과부는 사또가 정말 이 글재주 있는 선비를 진심으로 청한 것이라 믿고 삿갓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얘기하고 사또가 그대를 찾는다고 하자 삿갓은 웃으며

"사또가 만나자 허면 가 봐야지요." 하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웃었고 여인은 작별이 아쉬워서 그날 저녁상을 드리면서 은근히 추파를 던지자 삿갓이 마다할리가 있는가.

밤이 으슥해지자 과부는 아들들이 잠에 든것을 확인한 연후 삿갓의 방에 살며시 칮아드니 삿갓은 아니 자고 있다가 여인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낙아챘다.

이틀만에 다시 맛보는 여인과의 운우는 한결 여유로웠고 이밤이 가는 것이 두사람에게 아쉽기는 마찬가진지라 섞고 또 섞고 태우고 또 태워서 오늘밤엔 살과 살이 모두 다 타부렸다.

작별을 앞둔 이밤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한숨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벌써 창밖이 밝은지라 아낙은 아들들이 일어나기 전에 안방으로 돌아갔다.

삿갓이 떠날때, 과부는 아들들이 볼새라 몰래 눈물을 글썽이며 이틀밤에 걸쳐 든 정에 몸부림쳤고 관가에서 받은돈 이백냥을 아들들 몰래 삿갓의 손에 쥐어주며 조그만 정표로 받아달라고 하였다.

"이거, 너무 고마워서 어쩔거나." 하고 돌아섰으나 아낙의 띠뜻한 정에 목이 매여 몇 번이나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하면서 천천히 관가로 향해 걸어갔다.

관아에 당도한 삿갓은 사또 앞에 나아가서 상소를 해결해 달라는 글을 쓴 장본임을 알리고 사또께 인사를 올렸다.

"소인 김삿갓, 문안 드리오."

"오! 그대가 글을 그렇게 잘 썼군!"

사또가 몹시 반기자 삿갓은 황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니 사또는 삿갓을 동헌으로 안내하여 곧 푸짐한 술상을 차려내와 실로 과분한 대접을 베풀었다.

사또는 원래 시문을 좋아해서 글을 잘 하는 사람이면 노유귀천(老幼貴賤)을 가리지 않고 사귀었고 한가한 틈만 있으면 한달이 멀다하고 고을 문객들을 모아서 시회를 열었다고 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간 후 사또는 삿갓의 시가 당장 듣고 싶어서 삿갓에게 이제 술이 거나해졌으니 시나 한 수 지어보라고 하였다.

이에 삿갓이 시제는 무엇으로 할까 물어 보니 사또가 자기가 이전에 그림자 영(影)자로 글을 지을려다 못지은 적이 있었다며 그림자 영(影)자로 해보라고 하였다.

진퇴수농막여공(進退隨儂莫汝恭) 여농혹사실비농(汝儂酷似實非儂)

월사안면경괴상(月斜岸面驚魁狀) 일오정중소애용(日午庭中笑矮容)

침상약심무멱득(枕上若尋無覓得) 등전회고총상봉(燈前回顧怱相逢)

심수가애종무신(心雖可愛終無信) 불영광명거절종(不映光明去絶踪)

나들이 할 때 나를 따름이 너처럼 공손한 건 다시 없을 게고 너와 내가 너무나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너가 아니더라 .

달이 서산에 기울면 너무 훤칠한 모습에 놀라게 되고 때가 오정이 되면 난장이 같이 보여 웃음짓게 한다.

베게 위에서 찾으면 찾을 수도 없다가 몸을 등잔 앞으로 돌리면 문득 만나게 되는구나.

마음은 비록 사랑스러우나 믿음성은 끝끝내 없으니 광명이 비추어 주지 않으면 종적을 감추니 안타깝구나.

사또가 이를 보고 쾌재를 부르며 이런 시재는 난생 처음이라고 하면서 삿갓의 글에 놀라움을 표했다.

- 옮겨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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