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하빈면 묘골 달성 삼가헌
달성 삼가헌과 하엽정그리고 하엽정 뜨락 앞 연못을 찍은 사진이다.
삼가헌(三可評)
충정공(忠正公) 백팽년(朴彭年)의 12대손인 광석(光錫, 1764~1845.
號 老公, 漢城府 右尹) 공이 묘골에서 이곳 파회로 분가하여 지은 건물
이다. 광석(光錫) 공의 부친인 성수(聖洙, 1735~1810. 號 三可) 공은
1769년에 현재의 정침 터에 초가를 짓고 삼가헌이라 했는데 그 아들 광석
(光錫) 공이 1809년 기사년에 초가를 헐고 정침을 지었으며, 18년 후인
병술년에 사랑채를 지었다. 이 살림채의 좌측에는 이 집의 별당채인 하엽정
(荷葉亭)과 연당이 있는데 이 건물은 광석(光錫) 공의 손자인 규현(奎鉉,
| 1817~1875. 號 |亭)공이 1874년에 건립했으며, 하엽정 앞의 연당은 본채를
지을 당시 많은 흙이 필요하여 파인 자리를 꾸며 연을 심어 연못으로 가꾸
었으며 하엽정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 되었다.
이 건물의 배치는 대문을 들어서면 앞이 사랑채이고, 이를 거쳐 안채에 출입
할 수 있게 되어 조선시대 관아의 양식과 비슷하다. 본채는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나 두 개 동으로 분리되어 있다. 정면 4칸 · 측면 1칸의 일자형 평면
으로, 곳간 2칸, 대문 1칸, 방 1칸, 마구간 1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으로, 사랑 대청 4칸· 온돌방 2칸을 두었고,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사랑 대청 안쪽으로는 1칸의 마루방이 있고 그 뒤로 1칸의
온돌방이 있다.
안채는 'ㄷ'자 형으로 2칸의 부엌, 2칸의 안방과 2칸의 대청, 2칸의 건넛방.
1칸의 마루방, 2칸의 갓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사이의 서쪽
'에는 장독대 • 우물 · 곳간채 · 안변소가 자리 잡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초가로
'된 중문채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진입하는 통로로 180도 회전해야 진입이
'가능하며 방아실 등과 같은 헛간채의 일부가 중문이다. 별당은 원래 서당
으로 썼던 4칸 5행의 'ㅡ'자집을 1874년 현재의 모양과 같이 개축하였다.
여기에 'ㄱ'자로 돌출된 누마루를 부설하여 연당과 어우러진 운치 있는
별당채가 완성되었다. 이 집이 삼가헌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랑채에 걸려
있는 삼가헌기(三可記)에 적혀있다. 즉, 천하와 국가를 고르게 할 수 있고,
작록(祿)도 사양할 수 있으며, 백인(白功)도 밟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삼가헌은 중요민속문화재 제104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