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하빈면 묘동은 사육신 중 하나인 충정공 박팽년(1417∼1456) 후손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삼가헌은 박씨 집성촌과는 낮은 산을 경계로 하고 있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기의 호를 따라 삼가헌이라 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 뒤 그의 아들 광석(光錫)이 1783년 이웃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별당인 하엽정(荷葉亭)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하엽정이라 당호를 붙였다.

삼가헌(三加軒)이라는 이름은 중용에서 나왔다.

중용 제 9장에는 '子曰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자왈 천하국가가균야, 작록가사야, 백도가답야, 중요불가능야)' 라는 문구가 있다.

이 글은 "천하와 국가는 다스릴 수 있고, 관직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 위를 밟을 수도 있지만 중용은 불가능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천하를 다스림은 知이고, 작록을 거부하는 것은 인(仁)이며. 칼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용(勇)에 해당한고 한다.

즉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다.

하엽정은 원래 4칸 규모의 1자형 건물이었는데 앞에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붙였다고 한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이 있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어다.

이 별당은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으로 앞에는 <하엽정>이라는 당호와 함께 <파산서당 巴山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안채는 전면 6칸 전퇴집으로 3평주 삼량집으로 2009년 4월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전체적으로 볼때,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대표적인 주택이다

위키 백과에는 달성 삼가헌을 이렇게 소개 하고 있습니다.


몇차례 하엽정을 찾으러 방문을 했지만 갈때 마다 문이 굳게 닫혀 달성 삼가헌을 구경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오늘 다시 달성 삼가헌을 찾았습니다. 참 다행 스럽게 문이 열려 있네요

하엽정 연못이 있는 큰집과 그 옆 작은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박팽년의 후손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집을 짓고 난후 6대손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작은집에는 마침 주인과 아내가 마당에 나와 있엇고 바같 어른의 학교 동창이라는 친구분도 같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달성 삼가헌이란 고택을 구경좀 해도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아내분이 옆에서 조곤 조곤 안내를 해주시고 구경을 해도 좋다고 하십니다.

큰댁 안집 어른은 오늘 인근 다사읍으로 볼 일  보러 가셨는데 함께 있었으면 문화해설사 마냥 더 자세한 안내를 할수 있을텐데 하며

구경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고 안채를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작은집에는 1자형 고택이며 정원에 예쁜꽃을 심어두었고 원목 으로 만든 그네와 정우너에 응접셋트를 만들어두어 정원에서도

편히 앉아 담소를 나누고 소풍 나온듯 식사도 할수 있는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져 있습니다만 사진으로 남기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엽정이 있는 큰집을 들러 구경을 하고 몇장의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달성 삼가헌(큰집)의 정문 모습입니다

사랑채의 모습입니다

사랑채 정면 모습입니다

사랑채옆 창고(헛간)인듯 싶네요

사랑채옆 뜨락 입니다

하엽정으로 통하는 쪽문입니다

사랑채를 비문이고요

사랑채에 걸린 서각이 이채 롭습니다

안채에서본 대문의 모습이구요

뒤뜰의 장독대입니다

이곳이 하엽정이 있는 별당 이구요 현판에 <하엽정>이라는 당호와 함께 <파산서당 巴山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네요

하엽정을 소개하는 비문 입니다

이곳이 하엽정 앞 연꽃이 핀다는 연밭이기도 한 연못 입니다. 두꺼비 같은 동물이 살고 있나 봅니다. 인기척인 들리자 소리지르며 연못으로 뛰어 듭니다.



이상 중요민속자료 제104호 인 삼가헌의 모습과 하엽정을 사진으로 남겨 봅니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하엽정(荷葉亭)은 삼가헌 박성수의 별당이다.

삼가헌을 지은 그 이듬해인 1770년 택지의 서쪽에 네 칸짜리 파산서당(巴山書堂)을 지은 것이 그 처음이다.

가르치기 위한 집이라기에는 강학공간이랄 것 없이 대청마루가 너무 협소하다.

아마도 스스로의 공부를 위해 지은 집일 것이다.

조선 집은 일단 집을 앉히기 위한 기단을 쌓아야 한다.

이 기단에 쓸 흙을 다른 데서 가져올 수도 있지만 이 집에서는 마당을 파서 기단을 쌓았다.

그리고 그 파낸 자리에 물을 담아 연못을 꾸미고 연꽃을 심었다.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답습해 가로 15m, 세로 21m의 네모난 못을 만들고 가운데 동그란 섬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이다. 

파산서당이라는 이름은 이 건물이 지금의 계명대가 있는 자리의 파산을 조산(祖山)으로 바라보게끔 자리 잡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자리에 솟은 파산을 조산으로 삼고 그 먼 거리의 상징을 당호로 삼은 옛사람들의 치밀함과 넓음에 감탄한다.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도 나오듯이 향기는 멀수록 맑은 법이다.

한여름의 연못에는 연꽃이 그득하고 그 향기는 이 집의 곳곳에 스몄을 것이다.

그래서 하엽정의 방 이름은 영향(迎香)이다. 향기를 맞아들이는 방이다.

연꽃은 여름 내내 피는 꽃이다. 바다에 있는 어떤 섬들은 파고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운해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하엽정 연못의 수미산은 한여름 연꽃이 피면 사라졌다가 연꽃이 지면 나타난다.

그만큼 무성한 연꽃들이 여름 내내 피어 있다.

하엽정의 서쪽은 낮은 산으로 그 산 하나만 넘으면 유장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박성수의 후손들은 아마도 이 물자리를 경계해 우백호를 좀 보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1874년 파산서당의 서쪽 끝 칸에 누마루를 내어 달고 이름을 하엽정이라고 붙였다.

원래 방의 높이 보다 한 자 이상이 높게 계획되어 연못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비로소 백호가 보강되고 연못과 집이 하나가 되었다.


네모난 연못은 땅을 상징하고 동그란 섬은 천상계를 상징한다.

그 연못에 집이 비치니 이 집은 현실계에 있으면서도 천상에 존재하는 집이다.

아직 연꽃이 피지 않을 때는 붉은 배롱나무 꽃잎이, 가을의 문지방 너머에는 단풍나무 잎들이 이 천상의 집 수면을 떠다닌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20404/45269071/1#csidxb5ee75c203d2ccca3717a38fb4d1c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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