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가옥이라는곳을 다녀와서 인터넷을 찾아 보았다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주택으로

일년에 봄철과 추수철에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거처로 사용되던 별장과 같은 건물로

서구식과 한식, 일식의 여러 건축양식이 절충된 다양한 양식적 특성을 띄며,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며 이영춘 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으로 인해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가 되고 있다.

쌍천 이영춘 박사는 한국의 슈바이쳐라 불리는데 호인 쌍천(雙川)은

두 가닥의 샘물 즉 육제척 질병을 치유하는 샘물과 영혼을 치유하는 샘물이라는 뜻이다.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1903년 10월 태어났다.

평양고보 사법과 시절 담임선생이던 경성제대 와다나베 교수의 소개로

전북 개정의 구마모토 농장에 소속된 2만여 명 소작농 가족을 돌보기 위해

1935년 4월 33세의 젊은 나이에 자혜의원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호교사제와 의료보험조합을 실시하였다.』


이영춘 박사는 질병을 예방 함으로서 국민들을 병에서 구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예방 사업과 그리고 간호사를 배출 하는 간호 학교를 설립하여

의료 사업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이영춘 가옥은 개정동 423-11번지 옛 개정병원(開井病院) 본관 동쪽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경에 군산지역의 대지주였 이던 일본인 구마모토(熊本利平)가 농장 관리를 위해 지은

별장 주택이었으며,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는 가난한 농민에게 고리 대출을 하거나 소작을 하게 하여

농민들의 토지를 수탈 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농장의 소유주가 되었다고 한다.

이 농장에 소속된 소작농 가족을 돌보기위해 이곳으로 오고 난 이후  의료봉사를 하며

간호학교를 설립하고 기생충학회, 기생충박멸협회의 창립과 운영과정 등에 도움을 주었고

농촌의 성병과 결핵의 예방 및 근절에도 노력했다.

해방 후에는 개정병원 원장이었던 이영춘(李永春, 1903∼1980) 박사가 거주하였다.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는 농민들을 구원한 인술(仁術)에 존경과 고마움의 뜻을 잇고

일제 수탈의 잔재를 알리기 위해 이영춘 가옥을 2003년 10월 31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하였다.

현재는 학교법인 경암학원의 소유로 되어 있고 군산 간호 대학교를 운영 중이다.


정말 집이 으리 으리 합니다

샹데리아도 예전에 있는 그대로를 보존 하고 있다하구요 다다미 방은 나무로 깔았지만요

거실의 삼나무 바닥은 옛날 그대로를 보전 했고요 프랑스에서 가져온 의자는 멋스럽고 귀품이 있습니다.

왕실에서 사용하던 소파는 그대로 이구요 벽에 달린 벽난로도 그대로 보존 되어 있네요

천장은 대나무 바구니를 엮어 짜듯 나무로 엮어짠 그대로 이고요 예전 중국의 왕실 고궁이나

태국의 왕실에서 본 듯한 우아함이 넘치는 집의 모습에 입이 딱 벌어집니다.

지금 들어가서 살아도 불편 함이 없을 듯 하구요 우아한 기품을 간직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단열도 잘 되어 있어 한 여름에도 시원할 듯 하네요 가는날 무지 더운 날이였는데 집안에 들어서니 시원합니다.

정말 으리으리한 궁전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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