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전광열


돈 만원이 대문짝만하다
큰딸 애가 명절 때 용돈이라며 보낸 십만 원
고맙다 못해 황송하기까지 하다
시간이 넉넉해서가 아니다
고속도로 통행료 아끼려 국도를 타 본다
타본 지 삼십 년된 시내버스도 타고
물어물어 승차권을 발급받아 지하철도 탄다
그리고 자가용은 집 앞에서 하품을 한다
아버지 물려준 텃밭
그깟 돈 안되는 농사 왜 짓냐고 투정부리던 내가
텃밭에 미쳤다
씨앗값 3천원에 3만 원어치 상치 얻으니
이만큼 남는 장사가 세상에 그리 많나 싶다
어차피 갚아야 될 카드값 현찰로 내니
세상천지 편한 희한한 계산법을 본다
직장생활 30년 돈 버느라 못 본
사계의 움직임이 다시금 눈에 든다
꽃이 피고 지고 다시 필 때
안타까이 내 하루가 줄어듦에 서러워할 줄 안다
풍요는 쪼그라들고 지나온 길은 겁나 아쉽다
삼십 년 전 돈벌기 시작할 때로
꼭 한 번은 되돌아가고 싶다
겸손하지 못한 나날들이었다
이참에 어디 경비원 자리 하나 찾아 볼까나
아~~ 그것마저 안되네, 아버지 수발해야 되네
천박하지 않은 하류인생이 시작되었다
깊어진 생각이 뒤통수를 때린다
내가 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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