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폭동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갖다 둘러대 길 민주화라고는 하지만 

민주화 운동이라면 민주적으로 데모와 민주적 의식을 갖고  집회를 해야지

폭력적으로 데모한게 폭동이지 민주화 라니?

그게 광주가 아니라 대구에서 발생 되었다면?

그 시절 나는 내 직장인 대구시청 옥상에서 데모하는 군중을 보았다 

두려움도 있었고 호기심도 있었고 용트림하는 젊음도 있었지만

버스가 불태워지고 진압하는 경찰과 대치는 있었지만 

대구는 광주와 같진 않았다.

 

전남함평출신의철학자최진석교수가쓴
나는5•18을왜곡한다를 옮겨봅니다


지금 나는 5•18을 저주하고, 5•18을 모욕한다
1980년 5월 18일에 다시 태어난 적 있는 나는 지금
5•18을 그때 5•18의 슬픈 눈으로 왜곡하고 폄훼한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면서
그들에게 포획된 5•18을 나는 저주한다
그 잘난 5•18들은 5•18이 아니였다
나는 속았다. 금남로, 전일빌딩, 전남도청, 카톨릭센타,
ㅡ너릿재의 5•18은 죽었다.
자유의 5•18은 끝났다.민주의 5•18은 길을 잃었다
5•18이 전두환을 닮아 갈 줄 몰랐다.나는 속았다.
3•1,4•19,6•10,부마항쟁의 자유로운 님들께
동학교도들의 겸손한 님들께
천안함 형제들의 원한에게 미안하다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자유를 가둔 5•18을 저주한다
그들만의 5•18을 폄훼한다
갇힌 5•18을 왜곡한다. 5•18이 법에 갇히다니
자유의 5•18이 민주의 5•18이 법에 갇히다니.
자유의 5•18이 민주의 5•18이 법에 갇히다니!
그들만의 5•18을 저주한다.이제 나는 5•18을 떠난다.
5•18이 내게 말한 적이있다. 죽어라.그러면 산다.
나는 5•18을 지키려 5•18을 폄훼한다.
그날처럼 피울음을;삼키며;나는 죽는다.
5•18아 배불리 먹고;최소 20년은 권세 누리거라.
부귀;영화에;빠지거라.
기념탑도 세계 최고 높이로 더 크게 세우고 유공자도 더 많이 ㅡ만들어라
민주고 자유고 다 헛소리가 되었다. 5•18 너만 홀로 더욱 ㅡ빛나거라
나는 떠난다. 내 5•18속에서 나혼자 살련다.나는 운다.
5•18 역사 왜곡 처벌법에 21살의 내 5•18은 뺏기기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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