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국토종주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제 달성보에서 합천 창녕보로 가는 길을 한번 가봐야지 하고

전에 갔던 구간 뒤로 부터 해서 한번 가보기로 했다.

고령 개진면 개경포 기념공원에서 부터 합천 창녕보까지 갔다 다시 돌아 오마하고

차 뒤에 자전거를 매달고 이동하여 개경포기념공원에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개경포 공원에서 출발

개호정에서 경치 구경 한번 해주고

개호정엔 개경포에 관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야마노 이와구라라는 비석도 있네 이게 뭐지?

대가야 시대때 일본인인 니니기노미꼬도라는 사람이 일본땅을 향해

고령 지방을 떠날때 이곳에서 배를 탔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표지석이라고 해야 하나?

평지를 조금 달리다 급경사가 시작 된다 . 정상 6.0KM라는 표지가 보이고

산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 MTB 잔차 코스 안내도가 눈에 들어온다.

개경포를 지나 들꽃마을을 지나 원점 복귀 시 33.9km라고

가파른 길을 한참을 달리다 보니 MTB가 묘하게 매력적이다.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 가다 보면 어느새 평지가 나오고

그러다 또 가파른 언덕기리 나오고 조금 지나다 보면 내리막 길이 나온다.

길을 가면 수많은 라이딩족을 만났다 혼자 온사람도 있고 무리지어 온 사람들도 있고

남녀가 함께하는 그룹도 있다

함참을 헉헉대고 가다보니 청운각에 다다랐다

정상 6.0Km라고 씌여 있던 이정표가 어느듯 1.5Km로 줄어 있다

청운각에서 내려본 낙동강의 모습이다

 낙동강 저 너머 강가에 하얀 텐트가 보이고

그곳에서 보트를 타고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까마득히 보이는 저곳이 나중 우곡교를 지나 한참을 지나

기진 맥진하여 다다른 대구교육 낙동강 수련원( 달성군 해양 시설 관리공단 )이다

이곳에서 해양 레져를 즐길수 있다고 한다.

지나온 길이 까마득히 보인다 정말 멀리 왔구나

그 보다도 지나온 길을 다시 올라 가 원점 복귀 한다면 큰일이다

벌써 기진맥진하여 근력이 저하되고 있는데 어떻게 다시 올라가지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그런 와중에 빵꾸난 자전거를 타지도 못하고 붙들고 터벅 터벅 걸어 나려가는 노인네가 보인다.

어떻게 내려갈지 답답하다고 하소연을 한다. 에구 답답혀 정말 큰일이다.

나 라면 어찌할꼬 자전거를 버려두고 가는 것도 생각 해 볼일이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 내리막을 가다보니 오르막 보다 내리막이 문제다

마사토와 작은 모래 또는 울퉁불퉁 자갈돌이며 빗길에 움푹 패여진 산길이 자칫 잘못하면 미끌어져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몸이 움츠려지고 실제 주행중 슬립이 일어나 중심을 잃을뻔 하기도 했다

청운각 누각위에 소풍을 온듯한 남녀들이 음식을 먹고 있다.

라이딩 하던 다른 일행이 떡을 얻어 먹고 이야길 나누는데 자전거에 내려 청운각에 올라온

시각이 비슷하여 모두 같은 일행으로 알텐데 음식을 나눠 먹자고 하기는 아닌것 같고

다른 일행들은 음식을 얻어 자기 일행들 만 챙겨 준다.

에너지가 방전 된 때문인지 목도 마르고 음식을 조금 먹고 싶어지는데 그래도 아직은 참을 만 하다.

잠시 쉬는 동안 그 일행들의 이야길 잠깐 들었는데 비탈길이 위험하여 굉장히 애를 먹었단다.

브레이크를 양쪽 다 잡을 경우 자전거가 뒤집힌다는 이야기를 들어 양쪽다 잡질못해 빠른 속도로 내려 왔다고 하는듯

듣던 일행중 한명이 하는 애기는" 나는 일부러 그렇게 와일드 하게, 터프하게 탄다고 생각 했단다"

모두들 입을 모아 내리막길 조심 해야하는데 하며 제각기 비탈길을  타는 요령을 알려 준다.

내리막 길이 정말 어렵단 생각을 해본다. 

정상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보니 캠핑카가 눈에 보인다

이곳이 부례 관광지 인가 보다

근데 이곳에는 어찌된 셈인지 캠핑카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듯

이런 시설을 왜 놀리는건지 의아 스럽다


고령 부례 관광지라고 팻말은 있으나 유령 마을 마냥

사람이 한명 보이질 않는다

왜 이런 시설을 놀리는건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고령군 지방 의회에서 조례에 문제가 있어 요금 징수등의 문제가 야기된 듯 하다

올 여름 성수기를 목표로 개장 하려고 많은 돈을 들여 준공 하였지만 지방 의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여 개장을 못하고 있단다

지방 자치제를 하며 지방 단체장의 치적 쌓기에 급급하여 숱한 예산이 집행 되면서도 실리를 챙기지 못하는 탁상 행정의 산물 이라고 해야 하나?

부례 관광지를 지나 한참을 내려온듯 하다

우곡 넓은 들을 지나 둑길을 타고 한참을 달려 다다른 곳이 우곡교 이곳에서 합천보까지 8Km

한참을 망서렸다  합천 창녕보를 찍고 복귀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박석진교까지 올라갔다 개경포로 돌아 갈것인지를  박석진교 까지 여기서 26Km

박석진교에서 개경포공원까지 또 7Km MTB 자전거길이 26Km ?

그럼 로드길은 ? 그길 또한 만만치 않은 길이다 MTB길로는 다시 못갈듯 하다 로드길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로드 길도 만만치 않다 MTB길 만큼은 아니지만 굽이 굽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한참 반복하고 나서야 평지길이 나온다

목이타고 허기가 진다 마을 어귀에 교회에 들어가 물을 얻어 마시고 목을 축여 다시 한참을 달렸다

넥센타이어 주행 시험장(지능형 자동차 부품 진흥원 대구 주행시험장이 보이고 주행 시험장 내에는

평소 보지 못했던 차량들이 주행시험장에 있다 대구가 전기 자동차 기술 보급에 나서 곧 전기자동차를 생산 한다 더니 

이곳에서 주행 시험을 하나보다 조금더 지나다 보니 중앙 119구조본부 항공구조대가 보인다

평소에 볼수 없었던 건물과 시설물들을 지나 조금 더 지나니 대구교육 낙동강 수련원이 보인다

이곳이 청운각에서 보았던 텐트가 있던곳 인가 보다

 이곳에서는 보트와 수상스키등 레져를 즐길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 있는듯 하다

이곳에 앉아 잠시쉬며 매점에 들렸더니 매점은 닫혀 있고 목이 말라 물을 한잔 먹을래도 컵이 없어 마시질 못한다

어찌 어찌 컵을 구하여 목을 추이고 다시 나서니 구지면 오토 캠핑장이 보인다

오토 캠핑장엔 캠핑을 하고난 후 짐을 정리하는 듯한 사람들이 몇 몇 보이고

나중에 켐핑  장비를 갖추고 한번 와 봐야겠단 생각을 하고 게속 달려 가다보니 도동서원에 이러른다

도동서원을 한바퀴 횡하니 돌고 다시 길을 나섰다


도동서원의 은행나무다

도동 서원위에서 본 은행 나무와 도동서원 앞 뜰

도동서원 정문이 보인다

도동서원을 지나 다시또 고갯길이다 자전거로 오를수 있는 완만한 길이지만 워낙이 지친터라

자전거 패달을 밟지 못할 만큼 힘이 빠져 고갯길을 자전거를 끌고 걸어 재를 넘었다

사진은 대니산 다람재에서 본 도동 서원

다람재에서 박석진교 까지 거리8.5km 아직 한참을 가야 한다

다람재 비석



다람재에서 본 개진면

다람재에서 다시 한참을 달려 대구환경공단 달성사업소에 들러 직원분게 부탁하여

시원한 냉수로 목한번 축이고 다시 길을 향해 달린다

이윽고 현풍 고등학교 이제 박석진교 까지 멀지 않았다

배가 고프다 뭘하나 먹어야 겠는데 마땅한 곳도 없고

박석진교에 도달해서 중국집에 도착 짬뽕한그릇 게눈 감추듯 먹고 나니 이제 살것 같다

박석진교에서 개경포까지 7,8Km 한참을 달려 주차해둔 차에 자전거를 실으니

해가 뉘엇 뉘엇 저물어 간다.

그렇게 많지 않은 걸린데 총 거리 해봐야 60Km는 안될듯 하고 50Km정도 되려나

아침 10시쯤 출발 했는데 오후 5시라니 대체 몇 시간을 탄거야

시간당 10Km도 가지 못했단 이야긴데 왜이리 힘이 든건지

국토횡단 종주한다는 라이딩 족들이 새삼 존경 스러워 진다.


개경포에서-우곡교 까지 19 Km

우곡교에서 다람재 까지 16Km

다람재에서 박석진교까지 9Km

박석진교에서 개경포까지 7.8Km

모두 51.8Km 부레관광지에서 관광지를 둘러보고

한거 까지 모두 해도 52km 정도 조금 더 넘을 듯 한데

이렇게 헤매다니 합천 창녕보에서  하구언 둑까지 144km 이거 쉬운 거리 아닌것 같애

국토종주를 3일또는 4일만에 끝 낸다던데 이거 정말 어렵다




달성 도동서원(국가지정 사적 제488호)

도동서원은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 때 훼철 대상에서 제외된 전국 47개 주요 서원 중의 하나이다.
본래 서원은 선조 원년(1568)에 지방 유림들에 의해 현재 서원이 있는 곳에서 약 9km 정도 떨어진 비슬산 동북기슭에 쌍계서원으로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선조 37년(1604) 현 장소인 대니산 기슭에 사우를 중건하고 제당과 다른 건물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사림의 협조로 건립하였다.

이 후 1607년에 예조와 경상 감영 사이에 수차례 공문을 통해 서원명을 '도동'으로 정하고

최종적으로 사액이 결정되었으나 사액 현판의 하사와 치제(致祭)는 1610년(광해군 2) 4월에 설행(設行)되었다고 하며 

이 때 한훤당의 위패도 함께 봉안하였다.
서원은 2층 누각인 수월루와 강당인 중정당, 사당을 일직축선상에 배치하고

강당 앞의 좌우에는 동·서재를 두었는데, 기능에 따라 공간을 분화시킨 배치법과 자연의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위계질서를 배푼 방법 등으로 볼 때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법의 전형을 보여 준다.
 행사와 교육의 중심인 강당은 높은 댓돌 위에 세워진 정면 5칸, 측면 2칸반의 주심포 맞배집으로

좌·우 퇴칸은 앞퇴가 있는 1칸씩의 온돌방이고 가운데 3칸은 앞면을 개방한 대청이다.

제사를 담당하는 공간인 사당은 가구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심포 맞배집이며 정면 3칸마다 당판 문짝을 설치하였다.

강당을 둘러싼 담장은 기와를 이용한 맞담으로 매우 아름다우며, 맞담에 설치한 환주문은 그 구성이 특이하다.
 도동서원은 불필요한 장식을 삼가고 간소하게 지어진 조선중기 서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

서원 내 강당(중정당)과 사당 그리고 이에 딸린 담장이 유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고

전면의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은 사적 제488호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도동서원 앞 은행나무


서원의 수문장 구실을 하는 이 은행나무는 도동서원으로 사액된 선조 40년(1607년)에

당시 안동 부사로 재직 중이던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외증손인 정구 선생이 도동서원 사액 기념으로 식수한 나무로 전해진다.

수령은 약 400년이다.

이 노거수의 가지는 사방 20m 이상씩 퍼졌는데 북쪽으로 난 가지가 부러질 때, 

부러지기 전 3~4일간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전해진다.

도동서원은 사적 제488호로 환원당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서원이다.


1605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창건되어 김굉필의 위패를 모시다가 1607년 '도동'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소수서원, 병산서원, 도산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서원 중 하나이며,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없어지지 않고 보존된 곳이다.



수령이 400년된 이 은행 나무는 1607년 (선조40년)에 안동부사로 재직중이던

한훤당 김광필 선생의 외종손이며 이황 선생의 고제인 한강 정구 선생이 도동서원 중건 기념으로 식수 한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한원당 김광필(1454~1504)은 본관은 서흥(瑹興), 자는 대유(大猷),호는 사옹(蓑翁).한훤당(寒暄堂)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며 특히 소학에 심취하여 스스로 소학 동자라 칭하였다.

1480년(성종11년) 초시에 합격 하였으며, 1494년 경상도 관찰사 이극균에 의해 유일로 천거되어 주부,감찰,형조 좌량 등을 역임 하엿다





도동서원의 정문인 수월루

수월루 좌측으로는 한훤당 김굉필의 묘로 가는 길이 있다.

도동서원 안내소 문화 해설사가 상주한다.



                                                    수월루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강당인 중정당에 가기 위해 환주문을 지나게 된다.

환주문의 높이는 외산문처럼 낮다.

서원 안으로 들어갈 때 고개를 숙여 겸손함을 지니고 가기 위함 이라고 한다


강당을 둘러싼 담장은 기와를 이용한 맞담으로 매우 아름다우며, 맞담에 설치한 환주문은 그 구성이 특이하다

외삼문과 환주문을 지나야 나오는 강당인 중정당.


정면에 보이는 중정당이 원장과 유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던 강당인데

그 앞마당 좌 우에는 유생들이 학문을 닦으며 기거하던 동쪽 기숙사 '거인제"와

서쪽 기숙사 "거의제"가 서로마주보고 있다.

또한 강당의 정면 기단에는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와

다람쥐 모양의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이 4개의 용머리는 서원앞 낙동강물이 넘쳐 오르는것을 막기 위한 비보책으로

물의 신 '용'을 상징한다.

그리고 강당 주위 담장은 흙과 기와로 쌓은 맞담으로 형태와 구성이 매우 아름 답다.

장판각은 유물과 목판을 보관 하던 곳이다



유생들이 학문을 닦으며 기거하던 동쪽 기숙사 '거인제"(동재)


강당 앞의 좌우에는 동·서재를 두었는데, 기능에 따라 공간을 분화시킨 배치법과 자연의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위계질서를 배푼 방법 등으로 볼 때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법의 전형을 보여 준다.


유생들이 학문을 닦으며 기거하던 서쪽 기숙사 '거의제"(서재)



중정당은 강학이 이루어지던 공간으로 앞면5칸 옆면2칸 반 규모의 건물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때 사람인(人)자 모양을한 맞배 지붕이다

온돌방으로 꾸민 좌우 끝 칸앞에 각각 작은 툇마루를 두었고 가운데 3칸 넓은 대청마루로 만들어 양쪽 툇마루와 통하도록 해 놓았다


중정당 뒤쪽에서본 환주문과 수월루


사당 앞에는 관광버스를 타고온 많은 사람들이 문화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서원 곳곳을 둘러 보고 있었다.

이 사당의 돌계단은 궁중에서나 볼수 있는 형식으로 왕의 허가를 얻어 왕이 살던 궁궐과 같은 형식으로 지어 졌다는 문화 해설사의 설명 이였다.


제사를 담당하는 공간인 사당은 가구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심포 맞배집이며 정면 3칸마다 당판 문짝을 설치하였다

 

사당에는 김굉필을 주벽으로 하여 한강() 정구(, 1543∼1620)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좌우에는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하나되기를 원하는 김굉필의 도학정신을 표현한 벽화 두 점이 있다.

제향 후에 축문을 태우는 망례위는 일반적으로 석물로 지상에 조성되는데,

도동서원의 경우는 사당 서편 담에 작은 구덩이처럼 생긴 감()이 설치되어 있다.




수월루

수월루는 도동서원의 정문 격인 외삼문과 일종의 여유 공간인 누각으로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각 지붕이다

유생들의 휴식처나 강독 공간으로 사용 되었으며 누각에 올라서면 동북 쪽에서 흘러오는 낙동강과 고령 개진면 일대의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은행 나무- 김광필나무라고 명명되어 보호하고 있으나 실제 심은 사람은 조선중기 성리 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으로 도동 서원이 사액된것을 기념하기위해

식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잇다.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펴치고 남인 예학의 대가로 알려진 한강 선생은 학문적으로 대선배이자 외증조부이기도 한

한훤당을 제향하는 서원 건립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렸다고 한다.


대니산 다람재에서 본 도동 서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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