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풍경

[야담야화]가짜 심청과 심봉사의 사기극 - 둔산동 옷골마을에서

藝河 옆지기 淸雲 2023. 2. 7. 16:11

가짜 심청과 심봉사의 사기극

 
 

봉사인 아버지와 댕기를 늘어뜨린 딸이 홍천 고을로 이사와서 저잣거리 뒷골목 끄트머리 조그만 초가삼간에 똬리를 틀었다. 

봉사 아버지 성이 손씨인데도 사람들은 심봉사라 부르고 이팔청춘 딸도 제 이름이 있건만 사람들은 심청이라 불렀다.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쏘다니는 시간에 심청이가 명아주 작대기를 잡고 앞장서 걸으면

심봉사는 작대기 끝을 잡고 뒤따라와 저잣거리 한 모퉁이에 거적때기를 깔고 앉아 사주팔자를 본다.

심봉사 몰골이야 봉사 점쟁이 모습 그대로 볼품없지만, 그의 딸 심청이는 저잣거리가 훤해지도록 깜짝 놀랄만한 미인이다. 

동백기름도 안 발랐지만 반짝이는 흑단 머리에 사슴 같은 큰 눈, 짙은 속눈썹, 오똑한 콧날에 새빨간 입술은 도톰하게 다물었다.

사람들은 저런 아비 씨에서 어떻게 저런 예쁜 딸을 낳았는가 쑥덕거리기 일쑤였다.

 

항상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다녀 그녀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들어봤다며 쟁반 위에 옥구슬이 구르는 소리라느니 꾀꼬리 소리라느니 뜬소문이 돌았다.

저잣거리 장사치들은 가게문을 열어놓고 심청이 지나가기를 목을 빼서 기다리고

저녁나절 가게 문을 닫을 때도 심봉사를 데리러 오는 심청이를 기다린다.

동네 아낙네들은 묵이다 떡이다 호박죽 같은 별식을 하면 불쌍한 심청이에게 갖다주는 걸 잊지 않는다. 

심청이는 깍듯하지만, 입이 무거워 아낙네들은 세살 때 어미가 돌아가 아버지 심봉사 손에 자랐다는 것밖에 캐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심봉사와 심청이가 보이지 않자 심봉사가 아파 누웠다느니 죽었다느니 뜬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두어달 후에 밝혀진 사실에 모두의 입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천석꾼 부자 오참봉에게 심청이 팔려갔고 심봉사는 마음고생으로 드러누웠다는 것이다.

오참봉은 엄청난 부자로 드넓은 문전옥답뿐 아니라 보릿고개에 장리쌀을 놓아 몇뙈기 논밭에 식구들 목을 매는 소농의 논밭을 뺏다시피 하고

저잣거리 가게들을 거의 다 소유하고 있어 거기서 나오는 세가 곳간의 곡식보다 더 많고 심봉사가 사는 집도 오참봉의 셋집이다.

오참봉이 심청을 데려오려고 오천냥을 줬다느니 만냥을 줬다느니 논 스무마지기를 줬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았지만, 오참봉도 심 봉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꽃다운 나이에 오참봉 첩실로 들어간 심청이가 자나깨나 아버지 걱정으로 미간이 펴질 날이 없자 오참봉은 심청이의 친정 출입을 허락했다. 

심청이는 오일장 터울로 하룻밤씩 제 아비 집에서 빨래도 해놓고 반찬도 만들어놓고 거기서 잤다.

이튿날 점심나절 전에 오참봉 집으로 돌아오던 심청이가 어느 날은 저녁이 돼도 돌아오지 않았고 연유를 확인하러 갔던 집사가 돌아와서 오참봉에게 고했다.

“대문을 뜯고 집에 들어갔더니 집이 텅 비었습니다. 나으리.” 

오참봉이 벌겋게 달아올라 “뭐하는 게야 빨리 사또에게 발고 않고..."

집사가 “벌써 사또를 뵙고 자초지종을 얘기했고 우리 집 하인들도 모두 모였습니다.” 하였다.

오참봉에게 하도 얻어먹어 그를 상전처럼 모시는 사또가 육방관속을 집합시키고 온 포졸을 풀어서 나루터와 고갯마루를 지켰다. 

파발마는 바람처럼 달려 횡성과 춘천 관가와 합동작전을 펼쳤고 봉사 아비와 미모의 딸을 신고하는 자는 삼천냥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방도 나붙었다. 

백리 밖까지 그물을 쳐서 조여봤지만 오리무중. 봉사와 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산속에 숨어 있을세라 인근 산도 이 잡듯이 뒤졌다.

한달이 지나자 오참봉만 열이 끓어 오를 뿐 사또는 시들해졌고 사방팔방 심청을 찾아다니던 하인들도 주막에서 술만 마시다가 하루해를 보냈다. 

석달이 지나자 나루터와 고갯마루에 상주하던 포졸들도 원대복귀했으며 오참봉은 화병이 나서 드러누웠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새벽에 심봉사가 살던 집 바로 옆집에서 한 남자와 장옷을 덮어쓴 여인이 슬며시 나와 홍천강 나루터에서 첫배를 타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심봉사와 심청이가 석달 동안 숨어지내던 옆집은 부인이 아파 약값을 대느라 오참봉에게 고리채를 빌렸다가 이자로 논밭을 바친 박서방네다. 

안개 속으로 사라진 심봉사는 사실 장님도 아니고 심청은 심봉사의 딸도 아니다.

“첫날밤에 오참봉 몰래 돼지피를 요에 묻히다가 하마트면 들킬 뻔했지요.” 

“조심해야 혀. 이번에는 경상도 땅으로 가볼까나.”

남녀 이인조 사기단은 성큼성큼 남쪽으로 걸어갔다.

-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