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풍경

[야담야화]지혜로운 소금장수 딸의 이야기 -달성습지에서

藝河 옆지기 淸雲 2023. 2. 6. 14:13

지혜로운 소금장수 딸의 이야기

 
 

옛날에 한 재상이 살았는데 그는 지위가 높았으며 곳간에는 재물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가지의 근심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을 보는 것이었다.

재상은 좋은 아들을 얻기 위하여 불공을 드리고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사섭법(四攝法) 보시 애어 이행 동사를 실천하였다. 

그래서일까 부인이 임신을 하고 열달만에 귀한 옥동자를 낳았고 늦게 얻은 자식이라 애지중지 하면서 키웠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 성장하면서 아무리 관상을 봐도 박복하게 생긴 것이었다.

그래서 재상이 자신이 살아 있을땐 문제가 없지만 자신이 죽고나면 물려받은 이 재산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다.

재상은 지체높은 귀족층에서 며느리를 구했지만 복있는 그러한 사람이 없었으며 신분을 무시하고 며느리 감을 고르기로 하였다.

재상은 집을 떠나서 전국을 다녀 보기로 하였으며 농촌으로 어촌으로 정처없이 길을 갔다.

하루는 어촌에서 길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이는 15~16세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인데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지혜가 있어 보였다. 

그아이는 아버지가 염전에서 일을 하는데 새참을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이었다. 

염전을 일구어 소금을 만들어 파는 소금장수 딸이었으며 이에 재상은 아버지에게 딸의 혼사를 얘기하면서 청혼을 하였다. 

딸의 아버지는 재상에게 “어찌 보잘 것 없는 저의 여식을 며느리를 삼으려 하십니까?” 하였다.

재상은 딸의 아버지에게 “나는 복이 있고 지혜있는 며느리를 원하지 지체가 높은 가문의 딸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재상은 소금장수에게 많은 돈을 주어서 땅을 사고 집을 집고 새단장을 해주었고 며느리를 데리고 한양으로 돌아왔다.

우리 불교에서는 수상불여 관상이용 관상불여 골상이며 골상불여 심상이라 했다. 

마음 하나 잘 사용하는 것을 최고의 이상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한양에 온 소금장수의 딸은 재상이 본 관상대로 재주가 비상한 사람이었다.

한 개를 가르치면 2~3개를 짐작하는 사람이었고 상것의 떼를 벗고 양반의 법도를 익혀 나갔다.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은 있었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재상 어른 돌아가시고 마나님도 돌아가셨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술을 마시고 한량의 기질을 보였다. 

친구들은 아들에게 “자네 부인은 소금장수 딸이라며, 어쩌다가 그런 미천한 사람을 부인으로 얻었는가? 

이제 어르신도 돌아가셨으니 새 부인을 한번 얻어보시게?”하는 것이며

그 후에 남편은 첩을 두게 되었고 부부의 정도 멀어졌으며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부인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소 파도소리가 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부인은 더 이상 소박데기로 살 수 없다는 심정으로 남편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였다.

“마지막 청이 하나 있는데 내가 당신의 친구들을 모두 불러서 맛있는 음식을 한번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남편은 좋다고 하였고 부인은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만들어 남편 친구들에게 대접을 하였다. 

남편 친구들은 수저를 들고 음식을 입에 넣었으나 맛이 하나도 없었다.

알고보니 음식에 소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으며 이때 부인이 등장하여 인사말을 하였다 

“부족하지만 정성껏 차렸으니 골고루 많이 드십시요”

“어째서 음식에 소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황송하지만 상것인 소금장수가 만든 소금을 어찌 지체 높으신 양반님들 음식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연유로 음식에 소금을 넣지 않았으니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남편의 친구들은 부인의 지혜에 탄복하였고 왜 돌아가신 어르신이 이런 며느리를 얻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소금장수의 딸은 충분히 이 집안의 재산과 가문을 능히 책임지는 사람, 어르신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이다.

- 옮겨온 글 -